소설-도시의 푸른나무(62)

입력 1995-03-16 08:00:00

오빠야, 넌 왜 철수한테 맞기만 하니? 내한테도 슬슬 피하는 앤데. 내가 철수 때려줬다. 다시 우리 오빠 놀리거나 때리면 혼날줄 알아 하고 내가 말했어. 시애가 말했다. 나는 꼬마 철수를 때린 적이 없었다. 철수는 시애한테맞았다며 나를 다시 때렸다. 가슴을 쥐어박았다. 엉덩이를 차고 도망갔다.철수는 우리집 강아지도 때렸다. 나는 삽살이.멍구.또멍구.복실이를 때린 적이 없었다.미미와 나는 강을 따라 걷는다. 강은 물결이 낮다. 나부대지 않고 깊이 흐른다. 그동안 오래 가물었다. 수량이 적다. 강바람이 차갑다. 그러나 춥지 않다. 찬바람 속에 무엇인가 스며 있다. 부드러움이다. -이런 바람이 계집의마음에 불을 질러. 봄바람이 나게 마련이지. 특히 처녀애들은 이 바람에 몸살을 앓아. 늘 미열이 있어. 이 바람이 허파를 채우면 그저 마음이 들떠. 눈녹는 소리가 들리는 이런 봄날, 엄마가 말했다.

작은 새떼가 수면을 차고 난다. 흰목물떼새다. 목에 흰 띠가 있는 새다. 봄에는 아우라지강에도 저 새를 볼 수 있다. -흰목물떼새는 봄과 가을에 우리나라 중부지방을 지나가지. 나그네새야. 겨울이면 낙동강 하구에서 월동을해. 온누리에 봄기운이 돌면 북으로 떠나지. 아버지가 말했다."시우야, 팔짱 껴도 되지?"

미미가 묻는다. 나는 머리를 끄덕인다. 미미가 내 팔짱을 낀다. 몸을 바싹붙인다. 향수 냄새가 코를 쏜다. 외제 향수 같다. 미미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채종수가 부른 '사랑은 지칠줄 몰라'이다. 그 노래는 목소리가 묘하다.남자같기도 하고 여자같기도 하다. 따뜻한 그대 팔에 매달려 난 느낀다, 느낌은 늘 새롭다, 하고 부를 때가 특히 그렇다. 콧구멍으로 말이 빠져 나오는듯하다. 노경주는 키가 작았다. 네게 매달려 따라왔다.

강가에 낚시꾼 여럿이 앉아 있다. 한 낚시꾼이 낚싯대를 쳐든다. 낚싯줄 끈에 작은 물고기가 달려 있다. 새끼 붕어 같다. 숨 쉬기가 가쁘고 입이 아파파닥댄다. 붕어는 곧 죽을 것이다.

"다리 아파. 우리 앉았다 가자"

미미가 풀밭에 주저앉는다. 나도 그옆에 앉는다. 시들어 허옇게 마른 풀밭이다. 속줄기가 파랗게 나오고 있다. 여러해살이풀 물레나물이다. 여기저기 쑥이 돋아나 있다. 들제비꽃풀도 있다. 나는 쑥을 뜯는다. 쑥내음을 맡는다.쑥잎은 톱니 모양이다. 잎 앞쪽은 푸르다. 뒷쪽에 잔털이 많아 흰색이다. 쑥은 냄새가 독특하다. 이른 봄철에 쑥으로 국을 끓여 먹는다. 쑥떡도 맛이 있다. 나와 할머니는 부지런히 쑥을 뜯었다. 아버지가 죽기 전 그해 봄에 특히많이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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