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 개설서 가야사연구 출간

입력 1995-03-13 08:00: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일제의 '임나일본부설'로 왜곡된 가야사를 반성하고 이를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고령지역을 중심으로 거대한 고분문화를 남겼던 대가야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인 '가야사연구'(경상북도 펴냄)가 나왔다.고대사를 전공하는 노중국(계명대) 주보돈(경북대) 이명식(대구대) 김정숙(영남대) 최광식(고려대) 이희준교수(경북대)등 10명의 문헌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공동연구로 내놓은 '가야사연구'는 신라사나 백제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부수물로 가야사를 연구하던 관행 대신 가야를 주체로 한 본격적인 대가야 개설서라는 점이 돋보인다.'대가야의 정치와 문화'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 서설에서 주보돈교수는 대가야를 단순히 연맹체의 맹주였다고 보던 통념을 반박, 지방이란 영역을 가진국가수준으로 나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5세기 후반 무렵 대가야는 중앙집권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관료조직이 정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앙에 대비되는 지방의 개념도 존재하였다"는 그는 479년에 행해진 남제와의 통교는 외형적인 규모는 적었지만 백제 신라에 비견될수 있는 영역국가로서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경산대 김세기교수는 묘제의 변천을 통해 볼때 대가야는 3세기 토광묘 단계에서 4세기부터 수혈식 석곽묘를 축조한 지배층에 의해 점차 봉토석실분을축조하고 주변지역을 지배해나갔다며 대가야의 정치사회를 막연히 연맹체제로 인식한 종래의 견해는 수정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경북대 이희준교수는 고령양식 토기의 확산이라는 고고학적 현상을 바탕으로고령 중심의 가라가 가야지역의 반이상을 포괄하는 대가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렸다. 가라는 5세기 중기에는 황강유역및 남강상류를 포괄하는 연맹체의 맹주국, 5세기 말에는 황강유역및 남강 상류지역을 간접지배하는 영역국가화, 6세기에는 고령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직접지배하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신라의 낙동강 이서지역 진출에 따른 가야 제국의 연합에 힘입어 가야전역을 포괄하는 연맹체의 주도국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중국교수는 대가야가 부체제단계에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 채 멸망했다고 주장했다. 〈최미화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