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산책-8연속 세계제패

입력 1995-03-11 08:00:00

94년 2월 제2회 '진로배'우승. 이번에는 이창호가 주장을 맡아, 스승 조훈현을 가끔씩 괴롭히던 다케미야를 물리치고 우승컵을 받았다. 초반 서봉수의 4연승이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대회였다. 94년 7월 제5기 '동양증권배'에서 조훈현은 제자 이창호의 천적으로 알려진 요다(의전기기) 구단을 꺾고우승, 개인적으로 세계대회 그랜드 슬램을 달성해 보겠다는 야심의 일단을내비쳤다. 한달후 제7회 '후지쓰배'에서 조훈현-유창혁은 또다시 결승에 동반진출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훈현이 유창혁을 물리치고 우승하면서 세계대회 그랜드 슬램 혹은 사이클링 히트라고 하는 또하나의 금자탑을 쌓았다.돌이켜보면 '4인방'의 역할분담이 절묘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조훈현에게승률이 좋은 다케미야는 이창호가 꺾어 주었고 이창호가 껄끄러워하는 요다는 조훈현이 가로맡아 물리쳐 주었다. 조-이 사제가 피로한 기색을 보이면서봉수와 유창혁이 나서서 좌충우돌, 조-이 사제에게 휴식의 시간을 마련해주었다.일본의 요다가 이창호를 상대로 성적을 낸다고 하나 벌써 오래 전 일이다.섭위평이 최근 이창호를 연파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런 현상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요다는 한판 전체를 통해 골고루 잘 두는 바둑이지만 뚜렷한 특징이 없다는것이고 섭위평은 내리막길이라는게 세계 바둑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다.이창호는 지금도 무섭게 공부를 하고 있고 어느 틈엔가 단점으로 지적받던'포석의 발늦음'에서는 진작 벗어났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자신의 본령인 기다림과 인내는 변함이 없지만 요즘은 신수를 터뜨리는데 주저하지 않는 과감성도 보여 주고 있으며 공격의 파괴력 또한 배가 되고 있다.조훈현은 이창호를 빼면 일본이나 중국에 무서운 상대가 없다는 자신감을 슬쩍슬쩍 내비치곤 한다. 인터뷰에서는 엄살에 겸손을 섞어 "나는 한계에 이르렀다"느니, "순전히 운이 좋았다"느니 하고 제법(?) 관록의 너스레를 떨기도하지만, 국제대회가 열리는 전장에서 그는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언제나 원기왕성하다.

그러나 이런 달콤한 상념 속에서 우리를 일깨우는 것은 '4인방'이 한국바둑의 전부는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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