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반세기 생활변천 50면(15)---과학기술

입력 1995-03-03 12:18:00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6분, 미국의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일본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8월 10일 일본은 워싱턴에 항복 메시지를 전달했고 8월 15일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았다. 50년전 일본의 패망과 함께 광복의 환희를 안겨준 것은 과학 기술의 결정체인 원자폭탄이었다.해방은 우리에게 과학의 위력을 일깨워주면서 찾아온 것이다.그러나 빼앗긴 나라를 찾을 당시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인력면이나 시설등에서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일본이 식민 지배의 효율화를 위해 36년동안 우리민족의 과학화를 의도적으로 저지하는 우민화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었다.한국외국어대 박성래교수(과학사)는 "일부 식민 사학자나 친일 인사들이 일본의 식민 지배가 우리나라 과학 발전의 기초가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역사의 왜곡"이라며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가장 큰 만행은 세계가 과학적으로 눈부시게 발전하던 20세기 전반기에 과학의 암흑화를 초래한것"이라고 강조했다.*기술인력 태부족

일제는 1924년 경성제대를 세우면서 식민 통치의 효율화를 위해 법문학부와의학부만 설치했으며 그나마 38년에 이공학부가 세워진 것은 태평양 전쟁 발발로 인한 전시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것도 일본인들이 3분의 2나 차지해 막상 해방 직후 우리나라 과학자는 일본등에서 교육받고 돌아온 귀국자를 합쳐고작 1백명 남짓,기술인력이라 해봤자 1천여명에 불과한 서글픈 실정이었다.이런 상황에서 50년 일어난 6.25전쟁은 우리 민족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미·소등 강대국들의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당시로서는 현대병기들이 총동원돼민족 살상의 비극을 불렀다.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과학기술의 위력을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했고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전쟁이 끝나자 우방인 첨단과학의 본고장 미국으로의 유학이 러시를 이뤘다. 휴전 후 3년간 도미한 자연과학도는 무려 1천7백여명으로 이 숫자는 53년부터 71년까지 18년간 유학한 자연계 학생의 3분의 1에 해당한다.60년대 들어 우리나라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강력한 경제부흥 시책을 펼치면서 산업기술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되는데 66년엔 국내 최초의 종합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발족됐다. 이 연구소는 당시 월남 파병을 조건으로 세워졌다는 설이 유력한데 박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연구소의 설립자가 되는 애착을 보였다.

*60년대 들어 개화

민간 부문에선 해방 당시 방적기술이 사실상 유일한 기술이었고 백열전구와전선이 생산되는 정도였다.

"60년대 초반만 해도 치약, 칫솔이 귀했지요. 중2때 부산쪽으로 수학여행을가면 치약등을 유일하게 생산하던 럭키부산공장이 필수 견학코스였지요"김영호씨(45·대구시 대명동)의 말처럼 6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현대적인생산품은 거의 보기 힘들었다. 중소도시 이상이 아니면 태반이 아직 백열등이나 형광등등 소위 '전깃불'은 들이지 못했고 석유기름으로 호롱불을 밝혔다.

"어린 시절엔 아련한 호롱불 밑에서 친구, 형제들끼리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거나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 이야기를 들은 것이 기억에 선연합니다. 이때 어머니는 밤을 새워 똑딱똑딱 다듬이질을 했지요" 경북 북부 산간 지방이 고향이라는 박말분씨(53)는 요즘은 1년이 무섭게 첨단기능의 새 제품이 나오는등물질문명의 발달이 가속화, 생활의 편의는 비할 바 없으나 옛시절의 푸근한인정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사실 50년대에는 농촌 마을에선 '스피커'라 불린 확성기가 문명의 이기로선유일하다시피해 오락용으로 톡톡히 구실을 했고 69년대에는 재봉틀, 라디오,전기다리미, 전화기, 70년대 전반만 하더라도 TV, 세탁기등 각종 가전제품은웬만한 가정에서는 갖추기 힘든 재산목록이었다.

*푸근한 인정 아쉬워

그러나 70년대의 눈부신 고도성장의 결과, 80년대 들어선 산업 기술제품들이백화점등에 넘쳐나는등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게 됐다. 이제 산업사회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70년대 이후 출생자등 신세대들은 기성세대들이 겪었던 궁핍과 고통을 먼 꿈속의 이야기로 여기게 됐다.

90년대 들어선 정보, 전자, 신소재, 유전공학등 첨단기술의 엄청난 발달로 1년전 제품이면 구형으로 몰릴 정도로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졌다. 현대문명의총아로 등장한 컴퓨터 경우 PC만 해도 현재 2가구당 1대꼴로 보급됐으며 CD롬 드라이브, 사운드 카드, 팩스모뎀, 스피커등을 내장한 멀티미디어 PC시대가 도래하고 가상현실시스템까지 등장하는등 기존의 펜과 문서체제에 익숙한기성세대들은 새로운 생존환경에서 살아남고자 안간 힘을 쓰는 지경이 됐다.*외국의존도 여전

그러나 반도체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분야는 아직 핵심기술등을 일본등 외국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로 과학의 자주화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있다.

김명자 숙명여대 교수(51·과학사)는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기초·연구과학분야는 소홀히 한 채 서구기술을 단순히 도입하는데 치중, 기술·의식 양면의 종속우려가 크다"며 "서양 문물을 그대로 뒤따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기술의 자립화와 조화와 균형등 전통적 덕목의 계승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강조했다. 〈신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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