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중심 독립운동 한계

입력 1995-03-01 00:00:00

상해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은 타지역 단체들과 비교할때 근대화를 지향하고제국주의의 침략을 분쇄하려는 반봉건 반침략 투쟁이라는 보편성을 지니지만국민을 직접 기반으로 하지 못한 한계(특수성)를 보였다는 주장이 나왔다.안동대 사학과 김희곤교수(한국근현대사)는 저서 '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단체연구'(지식산업사 펴냄)에서 상해시대(1912~1932)의 독립운동단체들이 '정부' 중심의 독립운동을 전개, 1910년대 국민주권국가 수립운동을 마무리,1920년대에 정부조직체를 유지하면서 독립이후 건국할 국가상을 정립하는 성격을 지녔다고 강조했다.1912년에 출범한 '동제사'는 상해에서 조직된 최초의 독립운동단체로서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고, 국제정세의 변화를 이용하여 독립을 달성하기위해 1918년11월에 조직된 '신한청년당'은 3.1운동의 진원지 역할을했으며 다시 3.1운동으로 표출된 민족역량을 결집시켜 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20년대 전반기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발전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이념적갈등, 외교방략의 한계, 국내 지원감소 등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전체 독립운동계가 참가하는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었고 민족주의 세력들에 의해'한국노병회'가 조직되었다. 20년대 후반기는 전체 독립운동계에 이념적인갈등을 해소하고 독립운동의 통일적인 추진을 위해 민족협동전선운동이 전개돼 '한국유일독립당촉성회'가 조직됐다.

29년말 이후 30년대 초반은 이념적인 갈등으로 좌우세력이 결별하는 시기로좌파는 '유호한국독립운동자동맹', 우파는 '한국독립당'을 조직했다.김교수는 "상해지역의 독립운동단체는 1910년대의 활동결과로 임시정부를 수립했으나 1920년대에 들어 이념과 방략의 차이로 분화되는 양상을 보였고 이를 통합하고자 국민대표회의를 통해 노력했으며 이 노력은 1920년대 후반에들어 또다시 시도되었고 1930년에 들어서 조소앙의 민주사회주의적인 성향까지 반영한 정당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고 마무리했다. 〈최미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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