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구섬유-식어가는 섬유애착

입력 1995-02-28 08:00:00

성서공단의 ㅎ섬유회사는 지난해 봄 '울 조제트'를 개발, 금년도 홍콩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야드당 2달러50센트의 상당한 고가품이지만 까슬까슬하면서도 보드라운 촉감으로인해 해외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일단 성공작이었다.그런데 지난 연말부터 홍콩바이어의 태도가 이상해졌다. 이제 2달러50센트로는 더이상 사들일수 없다는 것이다. 신제품이라 당장은 대량생산이 어렵다고판단, 적어도 1년 이상은 이같은 가격대를 유지할것으로 믿었던 ㅎ사는 허탈해졌다. 지역의 섬유업체들이 너나 할것없이 '울 조제트'를 내놓는 바람에가격이 2달러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ㅎ사는 2달러이하로 떨어지면 개발비도 건지지 못한다. 그러나 이를 모방해 생산하는 업체들은 2달러면 톡톡히 수지를 맞출수 있는 가격이다. 그래서 "신제품을 개발하는 회사는 망한다"는 이상한 교훈(?)까지 생겨나게 된것이다.

섬유인들은 공식석상에서는 이런 비윤리적인 기업행동을 준엄하게 매도한다.그러나 등뒤로는 오늘도 공공연히 이런 행동을 자행하고있다. 결국 국내에서개발된 신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은 3년을 넘기지 못한다. 모방사들이 가격을낮추기위해 제품의 질을 자꾸 떨어뜨리다보니 결국 해외시장에서 신제품은외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ㅎ사는 지금 대단한 갈등을 안고있다. '벤츄라' '스칼릿'같은 신제품을 속속 개발해 놓았는데 발표하면 또 이같은 현상이 되풀이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상대적으로 대기업인 이들의 행동을 제약할 방법도 없다. '집안싸움'에 혈안이 된 대구섬유의 풍토를 원망하며 지금은 제품개발 의욕마저 상실하고있다.

지역섬유인들은 섬유에 대한 '애착'이 없다는 비난을 받고있다. 또 외형만좇다보니 숲을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 경쟁만 심화될뿐 더불어 성장하려는단결력도 없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기가 수출한 직물이 홍콩에서 팔린다는 사실만 알지 실수요자가 누구인지 잘알지 못한다. 그냥 물량생산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수요자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다보니 자연 가격이나 물량이 홍콩바이어에 의해놀아나고있는 실정이다.수동적인 생산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있다.2천년대 세계 제1의 섬유도시를 꿈꾸는 대구로서는 너무나 안이한 생산태도이다. 게다가 섬유로 어지간히 배를 불린 기업들은 사업확장을 앞세워 건설이나 금융쪽으로 옆걸음을 친다. 연구소를 만들고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것보다 빌딩을 세워 임대를 놓고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섬유업체들이 늘고있다.선진국에서는 '건강섬유'다 '환경섬유'다 하며 신소재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있는데 겨우 중하위 제품을 생산하는 대구섬유는 '돈'을 좇아 벌써부터 외도하고있는 것이다. 섬유의 앞날을 걱정하는 기업인, 섬유에 애착을 가진 기업인들이 줄어들고 있다. 감히 '섬유문화'라는 말조차 꺼내기어려운게 사실이다.

섬유산업협회 구민회부회장은 "섬유는 누에고치에서부터 시작돼야한다. 실크에 대한 충분한 연구없이 섬유를 개발하는 것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것과같다"며 대구지역의 섬유기초연구가 부족함을 개탄한다.

'대구섬유'는 그 명성을 지키려는 섬유인들의 애정없이는 장래가 보장될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대구섬유'의 기초를 새로 쌓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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