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안가를 철거할 때는 이론을 제기할 틈도 없었다. 적어도 한나라 통치자가 비명에 간 건물만은 역사의 현장으로 남겨두고도 소공원을 조성할 수있다는 소리는 나오지도 않았다. 안가라는 것이 공작·여자·술로 얼룩진 권위주의시대 밀실정치의 산실이었다는 목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청와대 본관이었던 총독관저는 기왓장은 고사하고 벽돌한장까지 말짱한 것이없도록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당시 한 업체가 철거공사를 무료로 해주는 대신 관광단지등에 이 건물을 옮겨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제의를 했으나 일축됐다. '일제잔재 청산'이란 대의명분앞에는 이나라 초대대통령부터13대에 이르는 여섯명의 대통령이 기거하며 국정을 이끌어 간 피땀어린 역사성도 설자리를 잃었다.*산교육장 제의 일축*
서울 남산의 경관을 흐린다고 TV3사가 생중계까지 하며 법석을 떤 외인아파트폭파해체는 문자 그대로 '깜짝쇼'였다. 스모그 잔뜩 끼지 않은 날이 별로없는 서울 하늘에서 그것이 철거된다고 남산이 얼마나 시원스레 잘 보이는지알수 없지만 15초간의 깜짝쇼를 위해서 들어간 돈은 보상비를 합쳐 1천5백여억원.
뒤늦게 '팽'을 당한 한 인사는 20~30년은 더 쓸 아파트를 그처럼 거액을 허비해가며 날려버려도 되느냐고 분통을 터트려 또한번 실소하게 만들었지만말인즉 맞는 말임은 집없는 영세민들이 먼저 알았다. 그 돈이면 자기네들 수천명이 임대아파트 한칸씩은 얻을수 있다는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철거여부를 놓고 그토록 소란을 거듭하던 구중앙청건물도 '자랑스런 광복50주년'을 맞아 헐리긴 헐리는 모양이다. 벌써 일부 신문엔 건물 전면에 철거작업을 위한 비계를 설치하는 사진이 실리고 있다. 정부에서도 76주년이 되는 3.1절에 각계인사 4천여명을 초청, 성대한 고유제를 치르고 철거현판을부착하며 살풀이·궁중음악제등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고 한다. 원래는 이것도 단박에 폭파하려고 했으나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차근차근 해체하기로 방침을 바꿨으니 그 얼마나 문화국민다운가.
*폭파해체 방침바꿔*
해방이 되면서 미군정 청사로 쓰였고 48년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을 가지면서 중앙청이 됐던 건물, 9.28수복때 가장 먼저 태극기가 게양됐던건물등등 국민과 영욕을 함께 한 숱한 역사적 의미를 새삼스레 들추고 싶지는 않다.
또 이 건물이 절대적 제국주의국가에서 선호하던 바로크적 도시계획에 의해세워졌다는 건축사적 의미나 비록 건축주체는 일본이었지만 수많은 우리 기술자·노동자들의 피땀도 곳곳에 스며있다는 사실도 대단한게 아닐지 모른다. 압록강 뗏목으로 운반된 목재나 창신동의 화강암, 금천의 대리석등등 한국산천의 나무와 돌이 주된 건축재료였음에도 일제가 지었기 때문에 일제잔재가 된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그러나…그러나…. 현재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12만여점이나 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은 당장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정부는 2000년 중앙박물관이 완공될때까지 임시전시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12만여점이나 되는 유물은 한번 옮기는데만도 2~3년이 걸린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있다. 비용 또한 엄청날것은 불문가지다.
*유물은 어디로 가나*
더욱 더 큰 문제는 유물의 피난살이에 혹 파생될지도 모를 훼손이나 산일이다. 산일된 문화재 한점이 경우에 따라선 구총독부철거이상의 값어치를 지닐수도 있다. 구총독부건물이야 없어도 그만일수 있겠으나 없어진 문화재마저'일제잔재'쯤으로 치부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선건립 후철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보양보해서 현정권이 구총독부해체권한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문화재훼손에 따른 면죄부까지 부여받지는 않았을 것이다.〈본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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