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삶의 나른함과 무기력 속에서 문학은 우리의 은폐된 절망을 드러낸다. 시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선물 중의 하나는 이런 절망의 순간들과의 조우일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의 무늬를 시는 우리 앞에 띄운다. 좋은 시는 그 무늬가 단색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부드럽게 번지고 스며들면서 새겨지는 표현의 찰나적 흔적들, 그 무늬들이 서로 간섭하면서 이루는 밀어냄과 당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우연적 효과까지가 다 포섭된다.이러한 전제를 토대로 우리가 살필 신인 이혜자의 '미꾸라지의 언어'('대구예술'2월호)는 썩 만족스럽지는 않아보인다. 그러면서도 가능성의 뜨뜻한 덩이가 목울대를 차고 올라오는 힘을 가진 언어를 그의 시는 구사하고 있다.이 시는 하나의 극적인 장면을 다루고 있다. 멀리서 한 여인이 걸어 온다.병든 남편을 위해 미꾸라지가 담긴 비닐 봉지를든 그녀는 불행의 또 다른 정황 앞에 붙들린다. 여기서 껌파는 이의 시선은 얼굴이 붉어진 동전으로 슬쩍 자리바꿈을 한다. 여자 역시 껌파는 이가 아니라 비어 있는 동전 바구니를 본다. 어쩔 줄을 모르는 그녀의 마음결처럼 미꾸라지가 요동친다. 비어 있는 바구니는 비워내고 싶다는 욕망을 이끌어 내고 그녀는 미꾸라지를 쏟아 놓는다. 점액질의 생명이 흙위에서 버둥거린다. 불행 앞에서 우리 삶은 땅에 쏟아진 미꾸라지처럼 끈적거리다가 말라간다. 그러나 여인의 실존이 만나는 것은 이 정황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층위, 즉 점액질의 언어라는 정황을 불러낸다.불행 앞에 서면 우리의 언어도 끈적거리며 말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그의 시를 읽고 나면 손바닥에 끈적한 기운이 고여 온다. 그것은 소화되지못한 우리 삶의 무늬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 시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부분은 화자의 어법이 만들어내는 전이(전이)의 효과에 대한 것이다. 인용된구절을 통해 보듯 그녀는 불행한 정황을 유희를 통해 슬쩍 돌려버릴 줄 안다. 진지한 감동의 문장 속에서도 우리가 보는 것은 숨은 유희성이다. 그것이 그녀 시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지시성에 그의 문장이 끌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출발선상에 있는 신인에 대한 격려와 질책은 선배들이 떠맡아야 할 몫이며 책무이기도 하다. 부디 절망 가운데서도 '듬성한 붓솔로 밑그림을 그리는 가로수의 한가로움'처럼 우리 삶의 희망의 부분이 같이 교직되어 있는 좋은 시를 보여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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