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체육의 맥-유도21-마침내 결실맺은 세계정상의 꿈

입력 1995-02-22 08:00:00

80년대들어 한국스포츠는 급격히 성장, 세계무대에서 강호로 떠올랐다.이러한 강세를 주도한 것은 바로 유도. 유도는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일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세계제패의 선두주자가 됐다.한국유도의 명성이 알려진 대회는 단연 올림픽이다.

LA올림픽과 서울올림픽에서 유도는 각각 2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이 종합10위와 4위를 차지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이전까지 번번이 일본에 무릎을 꿇은 한국유도가 마침내 일본의 벽을 넘어선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올림픽에서 차지한 4개의 금메달 가운데 3개의 주인공이 향토출신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금메달의 주인공 안병근 김재엽 이경근은 모두 중앙중-계성고를 거치면서 유도의 기초를 닦고 실력을 쌓은 선수들. 같은 학교출신의 황정오가 LA올림픽에서 따낸 은메달도 빼놓을 수 없다.LA올림픽에서 한국유도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안병근은 대구시 북구 칠성동에서 태어나 옥산국-중앙중-계성고를 거쳤다. 안병근은 여러가지 면에서'불굴의 스타'로 꼽힌다.

중학교때부터 간장배달도 하고 식용유나 비누 등을 도매상에서 내다파는 등어려운 가정형편아래서도 그는 틈만 나면 유도에 몰두했다.계성고시절 '전국제패신화'를 창조한 뒤 기량이 한창 피어나던 대학3학년때인83년 B형간염진단을 받아 국가대표에서 물러나기도 했다.그러나 고통이 클수록 그는 연습에 이를 악물었고 병세호전과 함께 마침내국가대표로 재선발돼 LA올림픽에 출전했다. 71kg급에 출전, 3회전에서 우승후보인 일본의 나카니시를 맞아 특유의 저돌적인 공격으로 승리를 따낸 안병근은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감바와 맞붙었다.

계성고 마동철선생은 "경기시간 1분여를 남기고 발을 다쳐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극공세를 편 병근이의 투혼은 보기에도 힘겨웠습니다.병근이의 금메달은 한마디로 모든 악조건을 이겨낸 인간승리라 할수 있습니다"라며 당시를떠올렸다.

18세에 국가대표에 선발돼 19세때 LA올림픽에 출전,은메달을 목에 건 김재엽은 '유도천재'로 통했다.

국교시절 친구를 따라 유도장 구경간 것을 인연으로 유도에 입문한 김재엽은1년만인 5학년때 성곡기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주위를 놀라게 만들었다.중앙중-계성고를 거치며 한상봉 마동철 두 선생의 집중지도를 통해 급성장한그는 세계선수권대표선발전에서 국가대표 강의석을 물리치고 18세때 국내정상에 올랐다.

중앙중 한상봉선생은 "재엽이는 하나를 가르치면 두셋을 깨우쳤습니다.보통한가지 기술도 제대로 익히기 힘든데 재엽이는 허벅다리 밭다리후리기 들어메치기 등 상대에 따라 다른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할 정도로 타고난 유도선수였습니다"라고 그를 기억했다.

LA올림픽에서 일본의 호소카와에게 져 은메달에 머문 김재엽은 87년세계선수권대회에서 호소카와를 누르고 우승, 금메달전망을 밝게 했고 그 기대는 서울올림픽 60kg급 우승으로 이어졌다.

서울올림픽 유도65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경근은 유도집안으로 유명한선수.

향토유도의 거목 이석도씨가 부친이고 4형제가 모두 유단자여서 가족들의 단수를 합하면 모두 27단에 이른다.

이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경근이 유도에 일찍 눈뜨고 성장이 빨랐던 것은당연한 일이다.

유도인들 사이에서 그의 금메달이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빚어낸 작품으로얘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로 볼수 있다.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향토출신선수들이 보여준 활약도 올림픽에 못지않은것이었다.

최초로 참가한 59년 2회대회에 권용우 이석도 김위생 등 모두 향토출신의선수들이 선발된 것을 비롯, 향토유도의 저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81년 12회대회 황정오의 동메달을 신호탄으로 85년 14회대회에서 안병근과이경근이 금메달과 은메달을 수확한 뒤 87년 15회대회에서 다시 김재엽과 이쾌화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냈다.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선수는 영신고출신 김병주다.

김병주는 89년 유고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16회대회 78kg급에서 금맥을 일궈서울올림픽 이후 침체가 우려됐던 한국유도에 가능성을 비췄다.김병주는 영신고시절부터 실업선수들을 내던지며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으나안병근이 78kg급으로 한체급 올리는 바람에 서울올림픽 출전기회를 놓쳤다.이에 대한 화풀이라도 하듯 김병주는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공격력을 앞세워 LA금메달리스트이자 서울올림픽 준우승자인 독일의 비케네를 꺾고 일본의희망 모치다마저 제압,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각종 세계대회에서 향토유도인들이 보여준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지도자로서 한국유도에 끼친 영향도 그에 못지 않다.

이는 안병근이 국가대표팀코치로 활동중인 것을 비롯, 3개 실업유도팀 코치모두가 향토출신인 점만 보아도 쉽게 알수 있다.

실업유도의 무적군단 쌍용양회 코치를 맡아온 이경근에 이어 김재엽과 김병주가 각각 94년 창단한 한국마사회와 (주)빙그레의 신임코치로 선임돼 지도자로서 이들이 보여줄 활약상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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