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반세기 생활변천50년(11)-여가생활

입력 1995-02-14 12:47:00

"바깥마루에서는 흥겨운 윷놀이가 간단없이 계속됐다.…이미 그것은 이름그대로의 윷놀이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모 한 사위에 춤 한자리, 윷 한번에노래 한 가락, 거기다가 한 판 윷놀이에 걸린 시간보다 이긴 편의 춤과 노래로 떠들썩한 시간이 더 길었다"해방 이후 태어난 작가 이문열은 그의 자전적 장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서 어릴 적 고향마을(영양 석보) 사람 모두가 참여한 윷놀이판을 묘사하면서 이젠 가뭇하게 사라져가는 전통놀이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 젖고 있다.

*사라지는 전통놀이*

오늘은 음력으로 정월 대보름(1월 15일). 우리나라 연간 세시놀이 중 가장흥겹고 즐겁고 다채로운 행사들이 많이 벌어진 정월놀이의 정점을 이루는 날이다. "설날에서 대보름까지 어린 처녀들은 널뛰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마을에서는 윷놀이가 벌어졌으며 지신밟기로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를 이뤘지요" 김명식씨(50 유맒줌수성구 만촌동)는 50년대 말까지만 해도 경북농촌 지역에는 각마을마다 이같은 마을 공동 단위의 신명나는 축제적 행사가 여유로움 속에 풍요롭게 벌어졌다고 회상하고 있다.

각 명절에 벌어지는 이런 행사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 농사철의 고된일에서 벗어나 몰아일체의 경지 속에서 삶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넉넉하게배어 있었던 것.

그러나 해방후 50년. 마침 올해는 공교롭게도 정월대보름날이 서양의 명절에 해당된다는 '밸런타이 데이'. 벌써 며칠 전부터 대형 백화점을 중심으로 우리네 청소년과 20대 초반의 여성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면 효과가 있다는 상술에 놀아나 때아닌 '초콜릿 사기'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초콜릿사기 진풍경*

우리 민족의 놀이문화는 철따라 다양하게 펼쳐졌고 일상생활과 밀착돼 있었다. 겨울에는 설을 전후해 윷놀이와 종경도 놀이등 가족단위 놀이가 주종을이루다 대보름이 되면 동신굿, 지신밟기, 줄다리기, 편싸움등 야외놀이로발전했다. 개울물이 풀려 고기들이 놀고 진달래가 한창 피는 봄이면 천렵이나 화전놀이를 즐겼으며 여름에는 단오를 전후해 그네뛰기,씨름등이 펼쳐졌다.

신은경씨(47 대구시 북구 복현동)는 "마을의 큰 나무에 그네를 맬 때는 집집에서 짚을 가지고 나와 마을 총각들이 합심해 엮었다"며 "처녀나 총각들이 쌍그네등을 타면 둥근 보름달처럼 볼그스럼하게 볼을 붉히던 그 정취를요즘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고향의 잃어버린 옛 풍속을 아쉬워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 경제 우선 정책을 펼치면서 소위 '잘 살아보세'로대변되는 서구화와 물질 위주의 생활 방식이 급격히 도입됐고 이에따라 일제의 민족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펼쳐진 전통놀이 금지 조치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민중의 강인한 힘을 보여주었던 각종 놀이들은 점차 사라지게됐다. 초가집이 헐어지고 흙담장이 블록 담장으로 변하는 세태는 끈끈한 동류의식을 느끼는 연대고리마저 파괴하고 차디찬 도시화의 광풍은 전통 농촌사회를 파괴하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동류의식 무너져*

경제성장이라는 지상과제 밑에 전통적인 것들이 희생되긴 했으나 70년대와80년대 한국인들은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게 됐다. 해방 이후 20년이상이나 한국인들은 여가라는 개념이 거의 없고 세시에 따라 자연에 동화돼자연스럽게 즐기는 것이 삶의 방식이었으나 80년대 들면서부터 개발 붐 후유증으로 졸부들이 양산되고 투기로 한 몫을 챙긴 사람들이 늘면서 소위 '바캉스'등 노는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더했다.

'노세 노세 젊으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80년대 전반부터 성행하기시작한 관광붐은 외국 사람들에게 '그동안 못놀아 걸신들린'한국인들을 경이의 눈으로 쳐다보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80년대 후반 들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일찍 터뜨렸다"고공공연히 비아냥거림을 정도로 한국인들은 과소비를 일삼으며 그동안'고생한'것을 보상이나 받으려는 듯 흥청망청했다. 나이트클럽, 회관,가라오케,무도장등 유흥업소는 흥청거렸고 갈비집, 보양음식점등 먹는 집, 온천,사우나등은 시도 때도 없이 북적거렸다. 성인 뿐만 아니라 젊은세대까지 앉았다하면 '고스톱' '포커'등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름으로 비화,가산 탕진으로 패가망신하는 남녀도 부지기수로 늘어나기도 했다.

샐러리맨임을 자임하는 김모씨(45 ㎱뵉사차장)는 "90년대 들어선 이제1년이다르게 행락인파가 느는 것을 느낍니다. 올들어서는 주말이나 휴일에도 고속도로 사정등에 몸서리가 나 아예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말에는골프장에 한번 나가려 해도 부킹이 하늘의 별따기입니다"라며 달라진 여가생활을 대변했다. 여가생활의 변화는 최근 윈드서핑, 스키, 볼링, 행글라이딩,골프, 스케이트보드, 스킨다이빙, 롤러스케이트등 새 외래놀이가 대중 깊숙이파고들고 있는데서도 잘 드러난다.

*외래놀이 파고들어*

그러나 문제는 최근 일본의 놀이문화가 급속히 유입돼 광복 50주년의 의미를되새기게 하는데 있다. 요즘은 젊은 세대, 나이든 세대 가릴 것 없이 술 한잔 마시면 노래방이나 가라오케를 찾고 청소년들은 왜색풍의 로바다야키 주점이나 왜색 복사판 일색인 전자오락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한 민속학자는 "세상이 변하는데 옛 민속놀이만을 고집할 수는 없지만 놀이의 건전성이 훼손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퇴폐적이고 유흥적인 방향으로 흐르는등 불건전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왜색 ▩립저견잔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도환 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