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주가 미끌어진다. 엉덩방아를 찧는다. 내가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이래도 되지요?"노경주가 내 팔짱을 낀다. 업소 문지기를 볼 때, 술에 취한 아가씨들이 그랬다. 차 좀 잡아줘요, 하며 내 팔짱을 꼈다. 아가씨들은 걸음을 제대로 걷지못했다.
우리는 말없이 걷는다. 눈을 밟는 기분이 좋다. 눈은 발 아래서 뽀드득 하며다져진다. 노경주가 묻지 않으니 편하다. 이제 그녀는 넘어질 염려도 없다.노경주는 키가 작다. 머리가 내 어깨에 겨우 찬다. 매달리다시피 따라 붙는다. 그녀한테 로션 냄새가 난다. 알로에 로션이다. 인희엄마도 그 로션을 썼다.
퍼붓는 눈이 눈썹과 콧등에 앉는다. 얼굴에서 눈 녹는 차가움이 간지럽다.가로수는 히말리야 시타다. 상록수 가지 위로 눈이 쌓인다. 크리스마스 츄리같다. 주위로는 비닐하우스가 많다. 어둠 속에 들은 황량하다. 눈이 그 황량한 들을 이불처럼 덮었다. 차들은 엉금엉금 기어온다. 꽁무니로 화가 난 매연을 뿜어댄다. 가는 차도 차라리 걷기만 못하다.
"어릴쩍에 산동네에서 살았죠. 눈이 오면 질색이야요. 연탄재를 뿌려도 미끄러워 내려 올 수가 있어야지요. 옆집 노친네 한 분이 미끄러져 뇌진탕으로죽는 사고도 났지요.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눈이 오니, 좋군요. 그런 세월도 지났는데…"
노경주가 포옥 한숨을 쉰다. 그녀의 머리가 눈꽃을 쓰고 있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뽑는다. 노경주의 머리와 목도리에 앉은 눈을 털어준다."나이트클럽에 있었담 시우씨도 여자들과 꽤나 사귀었겠어요?"그 지하 업소에는 아가씨들이 많았다. 낮에는 놀고 저녁 때 출근하는 아가씨들이었다. 화장을 짙게 하고, 진한 향수 냄새를 풍겼다. 아가씨들은 나와 난쟁이에게 아이스크림.호떡.군고구마 봉지를 안겼다. 아가씨들은 난쟁이와 나를 상대하지 않았다. 아가씨들은 난쟁이를 빈대아저씨라 불렀다. 나는 마상이라 불렀다. 예리만이 나를 시우오빠라 했다. 예리의 본 이름은 순옥이었다. 빈대아저씨와 나는 문 밖에만 서 있었다. 빈대아저씨는 손님이 오면, 셔옵쇼 하고 쇳소리로 외쳤다. 나도, 셔 옵쇼하고 따라 말했다. 빈대아저씨가홀의 문을 열어주며, 손님 세분하고 말했다. 나는 그 말까지 따라 하지는 않았다. 빈대아저씨는 손님수를 잘 세었다. 나는 업소 안에서 근무하지 않기에좋았다. 그 안은 너무 시끄러웠다. 찢어지는 음악을 한참 들으면 귀가 아팠다. 밖에 나와서도 한동안 귀에서 소리가 나고 따가웠다.
노경주가 내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털장갑이 닿는다. 그녀가 내 손을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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