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희칼럼 신년 축제

입력 1995-01-03 00:00:00

{신년축제}는 인류가 마련한 태고적인 행사 중의 하나입니다. 농경사회가 정착되면서 인류는 문자를 만들었고 정치제도와 유사한 사회제도를 개발해 왔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천년이 넘도록 인류는 계절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시간을 맞거나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신년축제를 행해온 것입니다.**농경사회부터 시작**

신년축제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기원전 3천년경, 고대 아카디아나 바빌로니아 제국이 건립되기훨씬 전에 수메리아를 선두로 한 몇개의 군소도시가 도시국가 형태의 군주국을 형성하면서 그 군주가 주축이 되어 신년축제를 국가행사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 말에 페르시아 황제가 칙령으로 신년축제를 중단시키긴 하였으나 그 후 다시 자연적으로 부활되어 지금까지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본래 신년축제의 시기는 단순한 새해의 출발점이 아니었습니다. 계절적으로는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시점이었고 농경사회에서는 건조기에서 우기로연결되는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위치한 신년원단(신년원단)은 동결과불임의 긴겨울 밤을 지나 해갈과 생성의 새로운 계절로 연결되는 교량이었습니다.

고대 수메리아 문화인들에게는 고사의 겨울과 재생의 봄, 그리고 그 사이에위치한 환절기의 신년원단이 자연속에서의 계절적인 변화를 의미했을 뿐만아니라 모든 자연현상이 인간 사회적인 현상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의미했습니다. 그들은 동시에 두 가지 현상이 대 우주적인 현상과 밀접한 연관성에 놓여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대우주적인 점성술이 자연의 생태계와 인간의 사회정치계를 지배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년축제 행사는 고대 문화인들이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첫째, 그들에게 인간존재는 대우주적인 질서속에 조화롭게 정돈되어야 할 부분이고, 둘째,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신들이 만든 대우주적인 질서를 인간의 태도와 생활 및 그 조직속에 바르게 반영시키지 못했다는 깊은 자기 반성이며,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의 과오가 뜻하는 죽음의 위협을 극복하고 새로운 각오가 가져올 새해의 생명 보장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세가지 요소가 12일에 걸친 신년축제의 다양한 의식적인 행위속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축제의 제1부는 통치자인 군주가 죽음의 포로가 되어 지하동굴에 감금되어 있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죽음의 계절인 겨울이 가져온 자연의 황폐화가 인간군주의 사회정치적인 무능과 무기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이것은 또한 대 우주적인 질서신의 행방불명을 동반합니다. 신과 왕을 동시에 잃은 군중들은 질서의 신을 찾아 헤매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 성전에 모여 질서신의 등장과 과업에 관한 창조신화의 전문을 낭송하게 됩니다.그리고 축제의 제2부에서는 제사장이 군주를 밖으로 안내하여 상징적으로 체벌을 가합니다. 그러면 군주는 속죄의 구절로 답변을 하고 참회의 고백을 합니다. 그 때 제사장이 사라졌던 질서신의 형상을 가지고 나와 신전의 성역안에다 모시게 됩니다. 이와같이 겨울과 봄사이에 위치한 신년원단에 군주가 참회함으로써 질서신이 환도하게 되고, 따라서 재생의 봄을 맞이할 준비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축제의 제3부에서는 신전의 성역안에서 군주와 성창녀의 결합이 이루어집니다. 이로써 불임과 고사의 겨울에서 벗어나 생산과 재생의 봄이 시작되는것입니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대 우주의 소생적인 생기가 상징적인 성행위를통해 이루어진 후 모였던 신들도 각자의 처소로 되돌아가고 원기왕성한군주가대 우주의 질서신을 대신하여 인간계와 자연계를 통치하는 것으로 신년축제는 끝납니다.

**불임서 생산으로**

이제 21세기로 가는 길목에서 1995년을 맞는 오늘의 우리 신년축제에서는한 가지 본질적인 것이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 축제가 망년회든, 설 잔치든, 신년교례회든 거기에는 어제 겨울의 고통을 망각한 채 불임과 실패에대한 심오한 반성은 없고, 내일 봄이 가져다 주리라고 믿는 특혜에 대한 기대만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나긴 겨울의 정신적인 폐허속에서일어난 많은 끔찍한 사건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깊은 참회를 할때 올바른신년축제가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를 위해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가지면서 인간을 자연화하고 자연을 인간화하는 신년의 축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에 성스러운 봄의 새 생명이 잉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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