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국정감사

입력 1994-12-29 08:00:00

"작년에는 참깨 한 말씩을 준비했었습니다.""참깨라니?"

"색깔이 까만 참깨 말입니다. J군에서 난 것인데 이조시대때는 궁궐에서 수랏상용으로 썼다 그러더구먼요. 몸에도 좋다 그럽디다. …그리고 재작년에는십장생도를 그린 화병을 준비했었구요."

"…자넨, 글씨 좀 볼줄 아나?"

"잘은 모릅니다만 모두 들은 풍월이죠. 이만하면 주는 쪽에서도 결례는 아니지 싶습니다."

"수고했구만. 그럼, 보좌관들과 상의해서 미리 차에 싣도록 하지.""네 알겠습니다."

진계장이 감사위원들에게 줄 기념품을 건네주고 감사장에 돌아왔을 때는 어느 틈에 감사가 끝나고 위원장이 마지막 인사를 하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고있었다. 끝까지 논란이 되었던 문제들은 위원장의 중재로 서면답변을 제출하는 선에서 극적인 해결책을 찾았던 모양이다.

"오늘 감사는 이것으로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사를 비롯해서 모든 간부들과 직원들, 그동안 감사를 위한 준비와 성심성의껏 답변을 주신데 대하여 위원님들을 대신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의 목적은 국정을 쇄신하는데있습니다.

오늘 국정감사에서 얻은 각종 보고와 질의에서 밝혀진 자료는 앞으로 우리가국정업무를 수행하는데 참고하고,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서면답변으로 미룬 두 건에 대해서는 기일 엄수해서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상으로 199×년도 Y청에 대한 국정감사를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의사봉을 힘있게 탕탕탕 두드린 위원장이 자리에서 빠져나오자, 연설대 앞에서 굳은듯 지키고 있던 도지사와 간부들이 그 앞으로 가서 인사를 했고, 다른 의원들과도 악수를 나누고, 서로가 수고했노라고,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속에서 웃으면서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이미 창밖은 어둠이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진계장은 그동안 녹음한 테이프 한 부씩을 뽑아내어 차례대로 번호를 매겨속기사에게 건네주었다. 한시간용 테이프가 모두 4개였다.

미혼같기도 하고, 기혼자같기도 한 여자 속기사는, "실수 없겠죠"하면서 거만스런 자세로 테이프를 받아 챙겼고, 진계장은 그에게도 "예"하고 고개를꾸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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