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국정감사(5)

입력 1994-12-06 08:00:00

"감사에 앞서 먼저 사과의 말씀부터 하나 드려야겠는데, Y도청 감사는 원래14시 정각부터 실시하려고 했습니다만 전 감사장에서 지연되는 바람에 한시간 가량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점 관계자 여러분들의 깊은 이해가 있으시기 바랍니다."내용은 사과였지만 목소리의 톤은 그냥 고지에 불과했다.

○○분과위원장 곽수영씨. 그는 작년 봄에 3선 의원으로 뽑힌 사람이다.3선을 모두 야당으로 입후보해서 당선된 그는 금년 봄 여당으로 자리를 옮겨분과위원장 자리를 하나 얻어찼다.

원래 그는 야구선수였다. 고등학교 야구전성시에 모교의 야구감독도 했었고,방송국의 스포츠해설위원 노릇도 했으며, 해설위원으로 얻은 명성을 밑천으로 정치에 입문했는데, 지금까지의 정치생활은 비록 야당에 적을 두고 있으나 순탄한 편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세비를 아예 전액 모두 지역구의 달동네 서민들을 위해 내놓았다. 3선이 확실해졌을 때 당시 대부분의 주간지들은 하나같이 그를 입지전적인 인물로 만들어 놓았다.

그때 소설식으로 풀어쓴 칸막이 기사에 의하면, 그는 3선이 된 뒤에서야 그것도 선거구민이 사준 구형 승용차를 굴리고 다닌다는 것이며 아직도 19평서민아파트에 사는 걸로 되어 있었다.

처음 입후보했을 때, 지역구민의 상여꾼으로 까지 일했다는 건 그를 아는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일화가 되어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그의 이런 행동을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문제니, 쇼맨 쉽이니 해서 반갑지않게 보는 측도 있지만, 좌우지간 그는 그 덕을 많이 보았고, 순전히 그 덕으로 남은 한번 하기도 어려운 국회의원을 세번씩이나 했는데 그것도 그만이가진 처세술이 분명했다.

곽위원장이 다시 목청을 가다듬었다.

"국회법 제 120조,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의거 지금부터 Y도청에대한 199X년도 국정감사를 실시하겠음을 선언합니다."

그는 의사봉을 3번 탕, 탕, 탕 두들겼다. 더욱 그의 행동이 엄숙해 보였다.사방으로 고갯짓을 할 때마다, 어제 새로 갈아놓은 쌍형광등 불빛에 반사된노란 금테안경이 반짝반짝 빛나주었는데, 그것 또한 더욱 그를 근엄하고 무게있게, 분과위원장으로 품위를 당당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서 그는, "국정감사를 실시함에 앞서 위원장으로서 당부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국정감사반이 이번에 Y도청을 찾게 된 것을 무척 뜻깊게 생각하며, 아울러 그동안 윤성모지사 이하 전 직원이 합심일체로 일선 공무를담당해 주신데 대하여 치하의 말씀을 드리고, 또한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위원들께서 현지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국사운영에 필요한 자료를 폭넓게수정할 수 있도록 정확한 보고와 성실한 답변을 해 줄 것을 당부드립니다.그러면 증인선서에 앞서 증인에 대한 참고사항을 사전에 임석 입법관으로 하여금 낭독토록 하겠습니다."

원래 남도 말씨의 강한 억양에 서울 말씨가 섞여 말투까지 무게가 가득 감겨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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