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신종 날치기

입력 1994-12-03 12:17:00

과연 {문민국회}는 뭔가 달랐다. 문민정권 하의 집권여당은 도덕성이나 정권의 정당성면에서 거칠것이 없다는 {자만심} 때문인지, 권위주의 시대에도 감히 하지 못하던 {기발한} 발상을 통한 신종수법을 개발한 것이다.2일 민자당이 95년도 예산안을 기습처리한 장면은 이를 저지하겠다고 벼르던야당의원들은 물론 취재진과 방청인들을 아연케 했다. 야당의원들은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다.민자당은 상상을 뛰어넘은 {희한한} 장소에서 무려 47개 법안을 1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후다닥 처리했다. 회의장도, 의원석도 아닌 2층의 15평 남짓한지방기자및 특별방청인 방청석이 역사의 현장이 됐다. 그곳은 40여 자리에 국회귀빈이 간혹 사용하도록 돼 있는 방이긴 하지만 사실상 지방기자들만의 고유한공간이었다.

이 한편의 드라마같은 날치기의 주연배우는 조직의 생리에 충실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이춘구국회부의장이었다. 당초 내가 처리했으면 했지 누구처럼(이만섭전의장을 겨냥) 남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하던 황낙주국회의장은결국 연막전술을 편 셈이다.

이부의장 옆에서 {연출}을 맡았던 권해옥민자당수석부총무는 이부의장이 {무선}마이크를 사용, 날치기를 하고 있는 동안 손을 흔들어 민자당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기도 했다. 문민국회에서 벌어지리라고는 상상할수 없는 장면이었다.

상황이 끝난뒤 주역을 맡았던 이부의장은 물론 황의장도 황급히 자리를 떴다.그리고 민자당총무단은 서로 수고했다며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단한 성공작}이었다는 자평도 나왔다. 변칙적으로도 법정시한을 지켰다는 문민정부의당당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졸지에 자신들의 공간을 {유린}당한 국회출입기자들은 뒤늦게 성명을 발표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황의장과 민자당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같은발상의 당사자에 대한 책임추궁도 촉구했다.

결국 문민정부 출범후 맞은 두번째 정기국회는 이렇게 서서히 막을 내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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