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앗제의 예술혼

입력 1994-11-21 00:00:00

생전에 단 두점의 그림을 팔았으며 평생 가난을 유산처럼 간직한 빈센트 반고흐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진가가 있다.'으젠느 앗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기까지 활약한 그는 프랑스 항구도시 보로도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한때 연상의 과부에게 열정을바치기도 했으나 언제나 가난에 허덕이는 내일이 없는 삶의 밑바닥에서 청춘을 보냈고, 마흔이 넘어 파리로 돌아왔을 때엔 낡은 카메라와 병든 몸이 전부였다.

그는 빈민촌 몽파르나스에 '화가를 위한 자료'라는 간판을 걸고 파리시내 모습을 착실하게 기록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였다.

한평생 세상과는 동떨어져 고독하게 살았던 앗제를 발견한 사람은 화가이자사진가인 '만 레이'였다. 그는 앗제의 작품을 초현실주의자들의 잡지에 실어주었고 다음해엔 조수 '에보트'로 하여금 찾아가게 하였으나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었다. 앗제가 남긴 2천여장의 원판과 1만여점이 넘는 사진은 '에보트'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져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돼있다.숨을 거둔 다음해에 공개된 그의 작품은 현대사진 역사상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의 기록성에 입각하여 현실속에 숨어있는 시의 세계를 찾아낸 앗제는 현실에 접근할 때 머리보다 가슴으로 앞세우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쌓이기 마련인 삶의 앙금을 가슴으로 느끼고 받아들여 '카메라의 시인'으로 불린다.

이러한 예술가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예술작품 또한 변화를 예고하고있다. 많은 예술가들은 살아서 인정받고 '부와 명예'라는 영광을 얻기를 원한다. 하지만 가끔씩은 처절한 가난속에서도 불굴의 예술혼을 꽃피웠던 반고흐의 첨예한 예술정신과 앗제의 투철한 기록정신이 자꾸만 그리워짐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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