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사가 등소평되살려

입력 1994-11-12 12:52:00

중국 최고의 지도자인 등소평이 금년6월, 산동생, 청도방문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온 후 심장 박동이 한때 정지, 빈사상태에 처한 적이 있었으나 기공사4명의 도움으로 살아났다고 일본의 문춘주간이 10일자 최신호에서 보도했다.등소평의 한 측근인사의 말을 인용, 이같은 소식을 보도한 문춘주간지는 진보승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테스트끝에 선발돼 온 이들 기공 고수들은 평소에도 등의 주위에 비상대기 상태에 있었다고 밝혔다.이 인사는 등소평이 입원했다는 소식들이 외부로부터 자주 보도되지만 사실등의 자택에는 서양의를 비롯한 동양의 기공사까지 포함된 완벽한 의료소조를 갖추고 있어 그의 입원과 관련한 뉴스들은 억측이라고 전했다.이 보도에 따르면 등소평은 응급조치를 받은 후 이미 건강은 회복됐지만 90세의 고령인 탓으로 약한 감기라도 사망에 까지 이를수 있는 상태이나 아직은여전히 중국의 {최고 권력자}라고 밝혔다.

문춘주간은 이어 북경내부에는 이미 등소평이후 시대에 대비한 권력투쟁의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현재 당.정.군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강택민도등과의 면담을 원하고 있지만 아직 못만나고 있어 등이후 누가 후계자가 될지는 실로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전했다.

등 자신은 정치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나 법률상으로는 평범한 일개 공산당원에 불과하지만 실제상황을 보면 당&정&군의 최고지도자인 강택민은 권력의 그어떤 분야도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 잡지는 덧붙였다.이 잡지는 또 중국공산당의 최고 정책결정기관은 정치국회의와 정치국 상무위원회로, 비록 등자신은 이 회의에 참석지 못하지만 매번 등소평판공실의 주임인 왕서림을 대표로 출석시켜 {성지}를 당 중앙에 전달한다고 보도했다.왕주임이 소지하는 {성지}는 두가지로 하나는 {등소평동지의 담화}, 다른 하나는 {등소평동지의 의견}으로 불리는데 모두 5cm정도의 큰 글씨로 쓰여지고있어 중국은 아직까지 사실상 등소평의 {독재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이 잡지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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