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시간-도도의 새벽

입력 1994-11-12 00:00:00

[아버지 말씀이 사실이더군요][이놈아, 또 뭘로 날 괴롭힐 심산이냐?]

아버지는 숫제 주눅든 목소리였다.

[제가 여태 빈둥빈둥 놀고만 있은 줄 아세요. 제가 그 동안 다 알아보았죠.왜 어머니께서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셨는지를요. 이래도 자꾸 모른다고 잡아떼실 겁니까?]

[네놈이 기어이 우리 집을 망쳐놓을 셈이구나.]

아버지가 탈기하고 계셨다.

[저는 우리 집을 망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해 왔습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아버지, 이번만은 제 말씀을 들으세요. 아버지는 떳떳하게 나서야 합니다. 억울하지도 않으세요. 그게 아버지의 잘못이 아닌데도요.]

큰오빠는 협박 반 애원 반으로 아버지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고 있었다. 기어이 큰오빠는 저번처럼 일을 저질러 놓고서야 휑하니 방을 나설 모양이었다. 나는 또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

언니가 내 기분을 감지했는지 살며시 내 손을 잡았다. 작은오빠는 소파에 앉아 괴로운 듯 머리를 두손으로 감싸고 있었고, 내 손을 꼭 쥐고 있는 언니는연방 한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래도 안된다. 그게 밝혀지는 날에는 너희들은 이 바닥에서 살 수 없다. 늬어머니도 죽기 전까지 그 점을 늘 우려했다. 그 심정을 알겠느냐. 그러니 광우야, 내 말을 들어라. 제발 애비 말을 들어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광우야]아버지가 떠듬떠듬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차츰 안쓰러운 애원으로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

큰오빠의 축축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방안은 오랫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우리가 궁금해 방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큰오빠는 아버지를 어린애처럼 보듬고 뜨겁게 오열하고 있었다. 큰오빠의 그런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늘괄괄하기만 하고 미운 짓만 골라 가며 하던 큰오빠의 눈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저장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꼭 작은오빠를 보는 것 같은 환상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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