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타인의시간

입력 1994-11-04 08:00:00

형부될 사람과 헤어져 버스를 타러가는 나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든했다.어머니가돌아가신 후 처음 느껴보는 발걸음이었다.역시 어머니의 눈은 알아줄 만했다.사람보는 눈이 정확하기로 소문난 어머니가 그를 한번 본 후 곧장 결혼을 서두르셨던걸 보면 그때 이미 어머니는 그의 운두 깊은 그릇을 가늠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나는 몇몇 사람들의 틈에 섞여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호주머니 속으로 살며시 밀어놓은 손 끝에 매만져지는 깔깔한 감촉이 행복처럼 따뜻했다.은행 앞에서헤어질 때 언니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사가지고 가라며 그가 살짝 넣어준 돈이었다.나는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한사코 나의 호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었었다.다시 한번내 가슴이 찡해지는 순간이었고,그런 나에게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종종 들러 달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저만큼 공중전화부스가 공복 상태로 서 있었다.그것을 보자 문득 은유에게 전화하고 싶어졌다.시계를 보니 종례 후 곧장 귀가했으면 들어왔을 시간이었다.나는 은유에게로 다가갔다.동전을 넣은 후 다이얼의 버튼을 꼭꼭 누르는 나의 가슴이 가볍게뛰었다.첫 발신음이 울리기 바쁘게 은유가 전화를 받았다.아마 은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의 밝은 목소리가 뜻밖이었던지 전화를 받은 은유의 목소리가 당황,의아,안도의빛깔로 빠르게 변조해 갔다.마침내 기쁨에까지 이른 은유는 막 라면을 끓여 먹을참이었다며 함께 라면 파티를 벌이지 않겠느냐고 꼬드겼다.누나 뒤에 붙은 은하도잡죄고 있었다.은유보다 은하가 보고 싶어 정말 그러고도 싶었지만,지금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탈기해 누워 있을 언니 때문에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나는 솔직히 언니가 많이 아픔을 털어 놓았고,그제서야 은유는 시뜻한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그럼,할 수 없겠구나]

[미안해.월요일에 봐]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송수화기를 걸고 나오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비틀거리며 분주살스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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