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무는 대형사고 여야 암담

입력 1994-10-26 00:00:00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유람선 화재 등 잇단 참사에 여권이 말을 잃었다. 여권은 성수대교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다가온 지방선거등 앞으로의 정치일정을 의식, 당정개편과 개각 등 마지막 카드는 최대한 아끼며,실무책임자에 대한 사법처리와 제도개선으로 민심수습을 시도했다.그러나, 24일 김영삼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방송을 준비하던 바로 그 순간에충주호에서는 승객 1백33명을 태운 유람선 {충주5호}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청와대와 민자당은 한편으로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있느냐"고 한숨을 지으며, 막상 사태수습과 떠나가는 민심을 잡아두기 위한 비방을 찾지 못해 허탈해 하고 있다.**청와대**

김대통령은 지난 21일 이영덕 국무총리의 사표를 받아든 후 3일간을 고뇌한끝에 24일의 대국민 사과담화를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전반에 나타나는 병리현상에 대한 근원적 진단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개혁의지를 천명함으로써 성난 민심을 무마하고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의 반전을기대했다.

그러나 24일 오후 유람선 화재사건을 보고받고부터 청와대에서는 김대통령의사과담화의 의미가 희석될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다음날 신문에 사과담화 기사가 유람선 화재 기사에 묻혀버리자 비서관들 사이에서 "대통령 모시기가 민망하다"는 자괴의 목소리가 새나오기 시작했다.김대통령은 이날도 저축의 날 수상자 오찬 등 예정된 주요일정은 소화했으나비서실은 이들 행사를 대부분 {비보도}로 처리했다. 김대통령도 이밖에 취소하기 곤란한 일정을 제외하고는 되도록 외부접촉을 끊고, 박관용 비서실장과이의근 행정수석 등 관계자로부터 충주호 사고관련 보고와 지시로 우울한 하루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부분은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민들의 원망은 어김없이 정부와 청와대로 돌아오고 있으나 총체적 사회병리를 한꺼번에치유하고, 민심의 이반을 막을 묘책이 없다는 것이다.

**민자당**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사고처리는 별도로 민심수습의 가닥이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여권은 상당히 곤혹스럽다.

김종비대표도 "한국에서 현재 가장 고민이 많은 사람은 김대통령이다"라며소속의원들이 공동책임의식을 갖고 사후대책마련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으나뾰족한 묘책이 없기는 마찬가지.

성수대교 사고후 나흘만인 25일 정부와 민자당은 고위당정회의를 갖고 감리제도의 강화와 시설물 안전진단을 위한 공단을 설립한다는등 각종 시설물의재해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같은 백화점식 수습대책은 과거 사건 사고가 발생할때마다 홍수처럼 쏟아붓던 사후약방문과 차이가 없어 민심수습에는 별로 효과가 없을것으로보인다.

여기에 국회 대정부질의를 파행시키는등 민주당의 공세를 민자당이 {정치공세}란 상투적인 어휘를 구사하며 비난하고있지만 민심은 오히려 야당쪽에 있어 여권의 곤혹스러움을 더하고있다.

김덕룡의원등은 "과거에는 무슨일만 터지면 국회를 열자고 하던 야당이 벌여놓은 판마저 외면하며 국회를 공전시키는것은 자기당착"이라고 말하고있지만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있다.

이한동총무도 이와같은 논리를 펴면서도 민주당의 공세에 정면으로 나설수없는 상황을 인식한듯 무리하게 맞대응하기보다는 {냉각기}가 불가피함을 인정하고있다.

이총무는 25일 신기하민주당총무를 찾아가 "더이상 어떻게 사과하느냐. 총리사퇴문제는 대통령이 반려하면서 정치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느냐. 다 민주당주장대로 되었다"고 민주당이 기세를 누그러뜨리길 기대했다.그러나 정기국회 또한 민자당의 희망대로 순조로이 운항될것 같지는 않다.여권은 현재 전국의 교량 터널 철교등 시설물에 대한 종합안전진단등을 제시함으로써 돌아앉은 민심을 바로잡으려 하고있으나 별무소득일것으로 보인다.이는 "붕괴된 민심이 다리하나 잘 놓으면 바로 서겠지"하는 극히 안이한 발상이란 지적이다.

다리붕괴로 인해 쑥 들어가 버린 대북경수로 지원문제. 명분은 고사하고 자존심조차 구겨가면서 뒷돈만 대는 {봉}이 되어버린 누가 뭐래도 실패한 외교작품이다. 지존파등 반인륜적 흉악범들이 활개를 쳐도 사후약방문 격인 말잔치만 있을뿐 이에대해 실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세리들이 국민들의 혈세를 훔쳐가도 실상을 파헤치기보다는 엄청난 먹이사슬이 만천하에 드러날까 쉬쉬하며 사건을 축소하기에만 급급하다.이들 모두가 {과거정권의 잘못}이라든가 {누적된 비리의 결과}라는 한마디속에 묻으려하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후 여권내부조차서도 개각의 불가피성이 예상됐던 것은 비단다리붕괴 때문만이 아닌 이러한 총체적인 국정난맥에 대한 책임정치의 구현과국면전환이란 측면에서였다.

그런데 김대통령은 또다시 이러한 예상의 의표를 찔렀다.

김덕룡의원등 민주계인사들은 "사람을 바꿔 모든게 해결될수 있다면 왜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며 여권의 진용개편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민주계의 인물부족 때문이란 분석도 있지만 이같은 처방이 옳을 수도 있다.그러나 잇단 악재로 인해 여론이 악화될대로 악화된 시점에 국면전환을 위해서라도 물갈이를 했으면 하는 기대가 민주계 인사들사이에서도 있었던 것이사실이다.

그러나 현난국타개를 위해서는 보다 고단위 처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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