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앞 화단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목련꽃이 어느 결에 떨어져 천더기가 되어있었다. 목련꽃을 보면 늘 어머니가 떠오르곤 했는데 지금쯤 어머니도 저렇듯 추하게 시들어 버리지 않았을까. 현관 계단 앞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으며나는 문득 생각나는게 있어 은유에게 물었다.[그럼 너 어제 저녁했었니?]
[아니 티브이 봤어. 왜?]
나는 대꾸없이 앞장서 계단을 올라가며 손끝에서 번지는 생갈치 비린내를 우울히 맡고 있었다.
반 애들은 대부분 와 있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은유와 한자리에 앉아 보기도 오래 되었다.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길때 일학년 때처럼 번호 순서대로 앉을까봐 나보다 큰 은유가 일부러 몸을 움츠려 내 뒤에 섰더랬는데 우리의 기대는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학기초 한달만에 그렇게 앉힌담임 선생님은 떠든다는 이유로 임의로 확 흐트려버렸다. 그후 우리는 한번도함께 앉질 못했다.
방송 수업이 곧 시작될 시간이어서 나는 연습장과 문제집을 꺼내놓고 앉아있었지만 머릿속이 멍멍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애들은 오순도순 속살거리거나 깔깔거리며 주말 오후를 계획하는데 내게는 그것이 먼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안방과 건넌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있을 아버지와 언니의 모습이 무대의 조명처럼 환하게 되살아났다. 집 걱정을 하지 않고 공부만 할수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전에는 부끄럽게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런줄 알았었다.
그토록 고대했던 아버지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안방 문을살며시 열어보았을때 아버지는 지겹지도 않은지 멀뚱히 앉아 어머니의 사진만 들여다 보고 계셨다. 매일아침, 운동을 시킨다고 작은 오빠가 부축해 마당으로 내려가곤 했는데 오늘은 아침밥을 짓느라고 미처 그럴 시간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고장난 로봇 같은 아버지를 부축하고 좁은 마당 가두리속을 바장이는 작은오빠의 웅숭깊은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늘 짜라투스트라의 감미로운 외침이 생각나곤 했다.
-참다운 남성 속에는 어린아이가 숨어 있다. 여성들이여, 남성 속에서 어린아이를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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