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타결이후 김학준박사 특별기고

입력 1994-10-20 00:00:00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사이의 협상이 만족스럽지 못하게 매듭지어졌다는 비판이 높아가고 있다. 정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에 대한 인책론마저 대두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핵 개발의 진상을 파악하는 일이다. 벌써 몇해동안북한 핵개발에 대한 논란이 많았는데 실제로는 어느 정도인지 분명하게 알고나서 대책을 생각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필자는 북한을 직접적으로 책임있게 다루는 정부기관에서 근무하고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정부와 일본정부의 북한담당관들이나 북한 전문가들, 유럽의 핵 전문가들, 지난날 북한의 가장 가까운 군사동맹국이던 러시아와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과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또 그들의 논문을 읽어보는 방식을 통해 문제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놀랍게도 이 중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은 엇갈려 있다. 한쪽은 북한이 이미핵폭탄을 적어도 1-2개정도 만들었다 는 주장이고, 다른 한쪽은 폭탄을 전혀만들지 못했으며 별 것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것저것 모두 종합해 필자 나름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북한은 일본의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폭1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을 뽑아내는데성공했다.

그러나 그 플루토늄의 순도가 낮아서 그것을 갖고 원폭을 1개라도 만들어낼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더구나 기폭장치를 만들지도 못했고 원폭 실험을 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도 없다. 이렇게 볼때 북한의 핵개발 수준은 별 것이아니다.

그렇다고해서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핵 개발을 계속 추진해 핵 무기를 손에 넣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그것을 완벽하게 막으려면 북한이 핵개발사업을 추진해온 핵심적 시설들에대한 특별사찰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의 과거 핵에 대한 투명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과 미국사이에 합의된 내용을 보면 문제의 시설들에 대한특별사찰을 앞으로 몇해동안 유예하도록 되어있다. 만일 이 기간에 북한이핵개발에 박차를 가해 핵무기를 손에 넣게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수 없다.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크게 염려하지 않는것 같다. 최근에얻은 정보에 따르면,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수준이 아주 낮으며 북한이 앞으로 핵무기를 만들어 가질 개연성은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한다.

이 결론이 북한의 핵개발 현실에 부합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우리 정부는 가려내야 한다. 그 결과 북한의 과거핵이 정말 보잘것 없는 수준이며 그래서 미래 핵에 대해서도 안심해도좋다는 결론에 자신있게 도달하게 된다면 북한과미국사이의 합의를 원칙적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사이의 합의에 긍정적인 측면도 꽤 많다. 북한에 대해 미국이 외교 승인과 경제-기술 지원을 베푸는 것은 결국 북한을 서방세계로 끌어내고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된다.

북한과 미국의 수교가 이뤄지면 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뒤따르게 될 것이며,그렇게 되면 마침내 남북한에 대한 미-일-중-러등 4강의 동시수교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 동시수교는 결국 남북한 사이의 국가승인을 유도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남북한 관계는 안정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경수로 문제도 만일 북한에 들어갈 경수로가 한국형이라면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아도 괜찮다. 경수로가 설계-건설-운영되는 7-10년의 기간에 남북한 사이에는 상당한 규모의 인적 물적-기술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되며, 그러한 교류는 남북한 관계를 공존 관계로 전환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또한반도의 통일은 결국 대한민국의 주도아래 이뤄질 것인데, 그렇게 되는 경우 북한에 세워준 경수로는 바로 우리 것이 된다.

그러나 북한에 들어가는 경수로가 한국형이 아니라면 그 경수로 액수의 절반을 부담해야 할 우리 국민들은 강한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미국과북한의 봉이 되는 것은 아닌가. 과연 이런 조건아래 우리가 그 부담을 져야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국제정치의 대가 헨리키신저 교수는 민주국가에서 외교정책을 추진할 때 국민의 동의와 협력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바야흐로 국민을 납득시키는 노력이 긴요해진시점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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