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타인의 시간(63)

입력 1994-10-14 08:00:00

나는 소파에 앉아 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마음이 초조해 대문 밖으로나가보고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밤이 너무 깊어 있었다. 언니가 돌아오면 이문제만은 반드시 따지리라 별렀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절대로 용서하지않았을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면에선 아주 엄격하셔서 우리가 늦게 돌아오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통금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항상밤 아홉시였다. 우리는 그게 늘 불만이었지만 어머니의 태도가 워낙 완강했기때문에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우리가 뭐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인가. 승혜야, 우리 투쟁하지 않을래?]언니는 가끔 내 앞에서 드러내놓고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다.한번은 언니가 아무 연락 없이 밤 열한시가 가까워 돌아온 적이 있었다. 도중에 길이 막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음에도 어머니는 용서하지 않으셨다.한시간 동안 언니가 손이야 발이야 빌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냥다짐을했을 때에야 어머니는 못이기는 척 앵돌아진 자세를 풀었다. 그날 언니는 얼마나 억울했던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엎어져 퍽퍽 울었다.언니의 귀가 시간은 형부될 사람을 정식으로 초대한 뒤부터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그것도 그가 합당한 이유를 들어 요구했을 경우에만 가능했다.지금 생각해도 어머니의 태도는 아무래도 좀 지나친 것 같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도 밤만 되면 그 귀가 시간에 대한 부담감때문에 도무지 흥겨워지지가 않았다. 다른 것은 한없이 자상하고 너그러우신 어머니가 왜 그 문제에 대해선 그리도 깐깐한지 우리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유야 한번 늦게 다니기 시작하면 버릇이 되어 자칫 마음이 헤퍼지기 쉽다는 거였지만, 그것도 우리를 옭아매기 위한 허울좋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너네 엄마는 좀 유별나신 것 같다고, 심지어 은유까지도 비아냥거릴 정도로 어머니의태도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를 엄히 잡도리하던 어머니도 정작 언니의 엄청난 비밀은 까맣게 모르고 돌아가셨다. 만일 그 사실을 알았다면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어쩌면 그때 돌아가셨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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