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타인의 시간(58)

입력 1994-10-08 08:00:00

작은 오빠가 아버지를 일으켜 안았다.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았던지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금세 아버지가 고개를 꺾어 버릴 것만 같아 나는 작은오빠의 등 너머로 아버지의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며 조바심을치고 있었다.[너는 정신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거실에서 언니가 큰오빠를 나무라고 있었다. 큰오빠는 대꾸가 없었고 긴 한숨소리만 후끈 귓불에 닿았다. 이어, 큰오빠가 휭하니 집을 나가는지 야멸차게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큰오빠를 부르러 뛰어나갔다. 큰오빠가 꼭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나는 저만큼 집 모퉁이를 돌아나가는 큰오빠를 향하여 발을 동동 굴렀으나 큰오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내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후 큰오빠는 여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그날, 아버지는 안정제를 드시고 나서야 가슴이 가라앉았다. 우리는 또 아버지가 일을 저지를까봐 안절부절못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다.벌써 11시가 가까워 오고 있는데 아직 언니도 종무소식이었다. 형부될 사람을 만나고 오기 때문일까. 그러나 여태 이렇게 늦게 돌아오는 일이 없던 언니였다. 그도 그렇다. 요즘 우리 집 형편을 잘 알면서 이렇게 붙들어 놓고 있는법이 어디 있담. 언니도 한심해.그렇게 늦을 거면서 전화 한 통화도 못해?우리 집은 왜 이렇게 꼬이기만 하는 걸까.

나는 마음이 뒤숭숭해 거실로 나왔다. 거실엔 불이 덩그렇게 켜져 있었으나빈 집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정말 아버지는 밤을 새울 작정인가 보았다.아직도 아버지의 안개같은 중얼거림은 지며리 계속되고 있었다. 뜻밖에도 아버지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 있었고 어머니의 사진을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손 끝이 떨리지도 않았다. 작은오빠도 이제 지쳤는지 손에 쥔 책을 내려놓은 채,벽에 등을 기대고 직수굿이 눈을 감고 있었다. 오빠의 오른쪽 코에는 아직도 탈지면으로 꽉 막혀 있었다.

좀처럼 전화기가 울릴 것 같지 않았다. 마치 고장난 기계처럼 전화기는 저녁내내 죽은 듯이 그렇게 엎드려 있었다. 은유에게 전화라도 하라고 그럴까.그렇게 해서라도 주검처럼 엎디어 있는 저 전화기를 화들짝 깨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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