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살인사건}

입력 1994-10-06 00:00:00

단락되면서 그 충격의 파장도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하다. 그러나 이 해괴망측하고 끔찍한 사건들은 이전까지 각종 사건사고에 무감각해져 있던 현대인들의 심리와 무의식속에 범죄에 대한 끝없는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으며 범죄가사회상의 한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이전까지는 없었던 잔혹범죄의 등장과 우리 사회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이들 사건이 일어난 후 일부 전문가들은 {선진국형 범죄}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진단한 이유는 미국이나 일본, 영국등 경제적 풍요가 앞서면서 그만큼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많이 떠안고 있는 국가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끔찍한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금전적 이득이나 개인적 원한과는 상관없는 불특정인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고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한 이들 범죄는 확실히 이전의 국내범죄와는 궤를 달리하면서 서구나 선진국의 범죄사례들과 닮은 점이 없지 않다.

50년대 {앵그리 영맨}의 일원으로 지칭되던 영국의 소설가겸 문명비평가 콜린 윌슨은 {살인의 철학}이라는 독특한 책을 썼다. 이 책에는 인류 초기에서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사회에서 있었던 기묘한 살인의 사례를 소개하면서살인방식의 변천, 살인과 살인범을 둘러싼 개인적, 사회적 환경등을 살피면서살인을 통해 각 시대의 사회와 문명을 심층적으로 검토한 책이다.윌슨은 이 책 막바지에 1966년 12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일대에서뚜렷한 동기없이 6명을 살해한 20대의 동성연애자 마이아론 랜스와 월터 켈바치의 살인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살인을 거듭하다가 마지막에는 술집에 들어가서 권총으로 사람을 쏴 살해한 후 달아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술집에서 살인을 하면 그 일대를 무장한 사람들이 수색할 것이고 달아날 길이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같은 살인을 결심하고 실행했는데 체포직후둘 다 살인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으며 심문을 받는 동안 줄곧 사람을 경멸하는 듯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윌슨은 20세기의 살인자들은 모두 무관심과 경멸심을 나타내는 경향을 갖고있다고 분석하면서 랜스와 켈바치에게서도 뚜렷한 살인 동기없이 사회규칙을지키는데 진력이 나 살인을 저지르게 됐다고 했다.

지존파와 온보현 사건에서 지존파 범인들은 "가진 자들을 죽이고 싶어서..."라는 동기로 피해자들을 화장처리할 시설까지 돈을 들여 갖춰 놓았고 그 중한명은 인육까지 먹는 엽기적인 행각을 저질렀다.

온보현은 "아버지가 미워서..."라는 이유로 자신의 나이와 같은 38명의 사람을 죽이겠다느니 50명까지 살해해서 기록을 세워보겠다는 말을 일기장에 적어놓는등 몸서리쳐지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사회심리학자와 정신과 전문의등 전문가들은 살인범들의 유전적 기질, 가정교육의 부재, 학교와 사회에서의 극심한 소외감등이 이들을파탄의 살인범으로 만든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경북대 심리학과 최광선교수(51)는 두 사건을 분석하면서 범죄자의 유전적소질에다 가정교육의 부재등을 1차적 원인으로 꼽았다.

최교수는 미국 시카고 슬럼가의 청소년이라 하더라도 77%의 청소년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범죄의 유전적소질이 있는 사람이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또 어릴때에 양친과의 정서적 접촉을 통해 부모의 도덕적 규율을 자식이 흡수함으로 해서 양심이 형성되는데 이들 사건의 범인들에겐 이러한 과정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소외됐기 때문에 부모를 오히려 증오의 대상으로생각하게 되고 이 증오심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면서 파괴적인 공격행동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학교와 사회에서의 소외감도 이들에게 욕구불만과 울분의 감정을 쌓이게 해부적응을 심화시켰고 범죄집단에 귀속됨으로써 서로에 대해 인정을 해주는등동질감을 형성하면서 욕구불만의 배출구로 삼았다고 진단한다.즉 이들은 이런 환경속에서 자존심을 갖지 못하는 자기비하의 인간으로 굳어지면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내부요인을 사회제도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등변명이 많게 되고 무감동한 냉혈한이 되면서 인명을 아주 경시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김정휘 고려정신과 원장은 인간은 4-5세때 도덕심이 형성되기 시작해 16세정도면 완성되는데 4-5세때 부모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심리적 상흔이 생기면서 억압된 증오심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되면 해서는 될 일과 안될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초자아}가 형성되지못한채 양심부재의 인간이 되고 사고와 판단력을 조절하는 {자아}도 흔들리면서 죄의식이 없는 인간으로 되기 쉽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상태에서 범인들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덕성교육을 받더라도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 범죄나 비행을 저지르는 {인지불협화음}상태가 되고 땀흘려돈버는 가치가 무시되고 황금만능이 판치는 정신체계와 가치관의 실종이 비쳐진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반사회적인 인간으로 되고 만 것이라고 분석한다.김원장은 지존파와 온보현이 이런 상태에서 순간적인 모욕이나 욱해서 저지르는 {증상적 살인}이 아니라 폭력을 우상화하는 상태에서 계획적이고 반사회적인 {본질적 살인}의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라고 진단한다.대구소년감별소에서 소년범들의 선도에도 힘쓰고 있는 김원장은 "어릴때 이미 따스한 정을 바탕으로 한 인간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유아기부터 종교를갖게 하는 것등이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며 "사춘기에 문제아로 나타났을 때선도한다는 것은 늦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정, 학교, 사회교육에 대한 지속적 투자가 꾸준히 이뤄지면서부의 공정한 분배, 형식적인 수준을 벗어난 사회복지시책의 실질적인 시혜방안등이 함께 이뤄져야 앞으로 이같은 범죄의 재발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라고충고한다.

최광선교수는 "먹고 살기에 바빠 팽개쳐진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동들을 위해서는 사회나 국가가 관여해 교육을 제대로 받게 하는 방안이나 소지역사회 중심의 인간관계를 활성화하는 제도나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도 한 방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존파와 온보현사건직후 한 여론조사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이러한 범죄가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여 주목을 끌었다.

지난 91년 여의도 차량질주사건외에 예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불특정인을대상으로 한 {증오와 광기의 범죄}는 비뚤어진 사회구조속에서 뒤틀려진 인간이 이전보다 많아짐으로써 국내 범죄사건의 일지에서 {더욱 공포감을 주는잔인한 범죄}가 새로운 범죄형태로 나타남을 의미하고, 이는 우리 사회와 시민들에게 {건강한 사회와 시민의 회복}이라는 무겁고도 시급한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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