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타인의 시간(55)

입력 1994-10-05 08:00:00

아직 큰오빠에게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들어오지 않을 때는 꼭꼭 전화라도 해 주곤 했는데 오늘은 그 전화도 없다. 큰오빠는 왜 그럴까. 작은오빠가 해야 할 일을 큰오빠가 해도 시원찮을 때, 저렇게 천방지축으로 나돌아다니지 않으면 온집안을 벌집처럼 들쑤셔 놓는다. 전에는 그렇진 않았다. 작은오빠보다 공부를 못하고 성격이 좀 우락부락해서 그렇지, 부모 말씀도 잘 듣고 착했다.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부터 달라졌다. 마치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혼자 떠메고 있는 것처럼 심각한 얼굴을 하고 돌아다녔다. 그 때문에 우리들 속도많이 썩였다. 어떤 날은 아무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아 가족 모두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큰오빠는 왜 그럴까. 무엇이 큰오빠의 마음에방랑의 불씨를 지폈을까. 어디서 데모가 터졌다 하면 큰오빠가 끼여 있을 것만 같아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는다. 큰오빠는 꼭 데모하는 그런 곳만 찾아다니는 만무방 같다. 그러고도 제적 당하지 않고 대학에 붙어 있는 것 보면 참용하다 싶었다.

큰오빠는 우리 집에서 왕이다. 아무도 큰오빠를 당할 사람은 없었다.심지어아버지도 큰오빠라면 혀를 설레설레 내두를 정도다. 처음엔 아버지와 많이다투었다. 아버지의 고함이 담장 밖으로 새어 나갈 만큼 크게 다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도 고집 센 큰오빠를 당해낼 순 없었다. 때로는 논리 정연하게, 때로는 침묵으로 대항하는 큰오빠의 자세는 늘 아버지보다 한 켜 위였다.

"그놈은 우리 집 원수다"

언제인가부터 아버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재입원을 하고 돌아온 뒤부터는 기력을 당해낼 수 없었던지 아버지 쪽에서 아예침묵으로 일관했다. 가끔 큰오빠가 돌아오지 않을 때면 회한의 눈빛으로 시선을 놓고 있다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큰오빠는 왜 그럴까. 차라리 군에라도 갔으면 좋겠다. 큰오빠는 올해 4학년이다. 졸업하고 간다고 했으니 아직도 일 년은 실하게 남았다. 나는 자꾸 전화기 쪽으로 신경이 쓰였다. 무슨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