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세풍-의로 사는 국민돼야

입력 1994-09-29 00:00:00

죽음의 노이로제에 걸리지않고 살아가고있다는게 용한 요즘 세상이다. 아무런잘못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억울한 죽음을 당하기 십상인우리는 어떻게 이 죽음의 공포를 벗어날수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절망만 앞을 가린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상상조차 힘든 대형사고와 흉악범죄는대책없는 전방위 불안만몰아오기때문이다.**{억울한 죽음}잇따라**

무궁화호열차전복 78명사망, 아시아나항공여객기추락 66명사망, 서해페리호침몰 2백92명사망등으로 기차도, 비행기도 배도 타기가 겁났던 지난해의 사고는 그래도 올해의 흉악사건보다 충격이 덜하다. 가능한한 기차나 배, 비행기여행을 안하면되고 불가피할 경우 개인용 구명장비라도 준비하면 어느정도 안심할수도있다.

그러나 아버지를 살해한 박한상의 패륜, 살인공장을 차려 닥치는대로 사람을죽인{지존파}의 반인간적범죄, 이들에 경쟁살인까지 벌였던 온보현의 인간사냥엔 개인적 방어수단이 가능할것인가. 미국처럼 총기소유가 자유로워도 야수적 살인광들도 꼭같이 총을 가지는한 더 위태로운 사태가 벌어질수있다. 그렇다고 사람마다 가스총을 가지거나 호신술을 배운다고 광란의 범죄앞에 신통한효과를 거둘수도 없을것이다.

**모방범죄 토양마련**

더욱 놀라운 것은 이같은 천인공노할 범죄의 한편에선 분노보다 공감의 심리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존파}범죄가 일어났을때 이들이 좀더 늦게잡혔더라면 부노소득의 과소비계층, 오랜지족, 야타족에 징벌을 내려주지 않았을까하는 시중의 얘기들은 그같은 공감을 의미한다. 범죄의 원인이 모두 교육과 사회환경탓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사건.사고가 생길때마다 잘못된 사회환경이 주된 동기와 배경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같이 사건과 사고를 보는 눈은 범인이나 사고자의 행위에 불가피성과 은근한 정당성까지 부여할 수 있다. 때문에 제2, 제3의 모방범죄는 물론 유사확신범마저 생겨나게할 토양을 만들고 있다.

전쟁상황이 아니면서 각종사고와 범죄속에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사회는 한마디로 난세다. 이를 국가도 개인도 방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무정부상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던져진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할수밖에 없다. 명색이 개인소득 연간 약8천달러 시대에 들어 물질적으로는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지만 이래가지고 돈을 아무리 많이 벌고 잘쓴들 무슨 살맛이 나겠는가. 먹고 즐기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집단에서 탈피하지 못하는한희망이 없다는 근원적 반성에서부터 출발치않을 수 없다.

한해에 8조원이상의 음식물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져 식수오염의 주범이 되고있는판에 아직도 국민학교엔 점심을 굶는 아동들이 많은것은 무얼 뜻하는가.음식을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던 조상의 가르침이 이 시대에 현실로 나타나는느낌마저 든다. 한편엔 과소비&호화사치가 판치고 다른 한편엔 반동물적 기근과 가난이 도사리고있다면 혼란은 필연적이 아닐까. 성도덕의 문란과 무책임한 결혼과 이혼은 고아가 아닌 숱한 고아를 양산하고 이들은 부모가 있으면서 가정없이 떠돈다. 무엇이 옳은지를 모르고 이익과 즐거움만 탐하는 세상의종착인 셈이다.

**새철학 정립할 때**

이 사회가 억울한 죽음을 면하려면 우리 모두가 새로운 철학을 가져야한다.아무리 경제지상의 사회지만 이제는 무엇이 이익인가에 앞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회로 돌아가야한다. 국가나 사회나 개인은 무조건 이익만된다면 어떤것이든 합리화시키는 자세를 버려야한다. 자기만 즐거우면 어떤 짓이든 부끄러움을 모르고 할 수 있는 태도를 고쳐야한다. 옳지 못한 방법의 이익이나 쾌락은 남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고 결국 그것이 나에게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이치를 깨닫게하는 것이 공포의 사회가 주는 교훈이다.혼란의 소용돌이속에서 맹자가 국가경영의 요체를 이가 아닌 인의라고했던가르침은 죽음의 노이로제에 빠져있는 지금 우리에게도 큰 깨우침을 준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