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타인의 시간(47)

입력 1994-09-26 08:00:00

언니는 정말 내 말을 곧이 들었던지 그날밤 거의 잠을 안자는 것 같았다. 언니의 마음이 진심인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따질 수가 없었지만 여전히 화가풀리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언니가 자든 말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누워서 생각할수록 아까워 나는 잠들 때까지 툴툴거렸다. 언니는 물론 단 하루도못가 언제 고민했더냐는 듯이 푼더분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밤이 좋았다.참, 그러고보니 요즘 언니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잠이 많던 언니가 요즘 들어 통 잠을 못 이루는 것 같았었고, 얼굴도 많이 상해 있는 성싶었다. 나는 어머니 일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무심히 보아 넘겼더랬는데,그렇다면 작은오빠 말처럼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나는 공연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어젯밤도 언니는 늦도록 잠을 못 이루고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렸다. 내가얼풋 잠이 들었는가 그랬는데, 언니가 나직이 나를 불렀다.[승혜야, 자니? 안 자면 내쪽으로 돌아누워봐.]

[왜 그래, 언니. 몇 신데?]

선뜻 눈이 떼지지않아 나는 여전히 언니 쪽으로 등를 보인 채 잠꼬대하듯 중얼거렸다.

[두시야. 잠이 안 와서 그래. 안 자면 나하고 얘기 좀 해. 미치겠어.][언니도 내일 출근해야 되잖아.]

[하룻밤 안 잔다고, 설마 죽기밖에 더하겠니.]

나는 마지못해 언니 쪽으로 돌아누웠다. 언니가 나를 힘껏 껴안았다. 나는그제서야 눈이 떠졌다.

[엄마가 미워 죽겠어.]

언니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가늘게 어깨를 추스르며 흐느끼고 있었다.나는 언니의 등을 감쌌다. 언니가 꼭 내 동생처럼 애처로워 보였다.[나도 그래, 엄마가 꿈에 나타나면 말도 안할 거야.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꿈에도 안 나타나.]

[난 꿈에 나타나면 마구 욕해 줄 거야.우리 가슴에 대못을 박은 원수라고.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있니]

내 가슴에서 얼굴을 뺀 언니가 손 끝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말했다. 어둠 때문에 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언니의 얼굴이 퉁퉁 부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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