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는 박정희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된 10.26사건과관련해서 용의자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이다.우리 국민은 물론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10.26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다.그 범인은 대통령을 제거한뒤 자기계열의 군부세력을 이용해서 계엄령을 선포해 사태를 장악하고 이어 혁명위원회를 구성해서 정권을 탈취하려 했다.김재규 스스로가 털어놓고 법원이 확인한 이러한 {3단계 혁명계획}은 10.26의 성격이 내란사건임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정승화총장은 김재규에 의해 10.26 내란의 군부후원세력의 핵심으로 역할을하게 되어 있었다. 또한 실제로 정총장은 김재규의 내란음모가 2단계계획까지 실현되도록 도와주었다.
정씨는 김재규와 동향일 뿐아니라 호형호제하는 친밀한 관계로 김재규가 추천해서 참모총장이 되었으며 총장이 된 뒤에도 여러차례 접촉을 가진바 있고10.26당일에는 범행장소인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범행시간을 전후해서 범행현장 별채에 대기하며 여러가지 납득할수 없는 행동들을 취했다.
바로 인접해 있는50m의 지근거리에서 수분에 걸쳐 수십발의 총성이 울렸는데도 참모총장에 이르도록 평생을 총성을 들으며 살아온 그가 대수롭지 않은오인사격으로 생각했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
사건직후 김재규로부터 대통령의 유고사실을 알게 되었으면 다른 사람도아닌 참모총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우선 그 엄청난 사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그 진상과 경위를 알아보는 일이 급선무였을 것이다.그런데도 그는 몇시간동안을 범인이 누구인지 사건의 내용과 배경은 무엇인지등에 대해서는 알아보려고 한 흔적이 없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범행현장 별채에서 김재규를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과 그곳에서 보고 들은 일들을 그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채 철저히 숨겼으며 보안을 유지하라는 김재규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권한을 대행해야 할 국무총리와 직무상 상관인 국방장관에게조차 수시간동안 보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김재규의 내란계획이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판단될 때까지 사태추이를 살피며 김재규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정씨의 혐의사실은 모두 법원이 내란방조행위로 인정하고 유죄로 판결했고그러한 판결은 확정된바 있다.
내란사건 수사는 바로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목적이었다. 소장이 대장을 연행조사했으니 {하극상}이 아니냐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으나 이 사건은상급자대 하급자의 문제가 아니고 수사담당자가 범법용의자를 조사한 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에게 연행계획을 사전에 보고한바 있다. 다만 재가를 함에 있어서 국방부장관의 배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국방부장관은 대통령께서 직접전화로 출두를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두차례나 도피잠적함으로써 그시간만큼재가가 지연됐을 뿐이다.
발단으로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살펴볼때 이 사건은 어디까지나 {김재규의 10.26 내란사건 관련 용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사건}일 뿐이다.
12.12사태 다음날에도 그 전날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은 건재했고, 헌법의 효력을 비롯한 헌정질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행정부와 국회와 사법부에도 변화가 없었으며 국민생활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검찰의 조사에 대응하는 문제를 놓고 본인은 고심을 거듭했다. 본인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검찰의 요구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10.26 내란}이라는 반인륜적 반국헌적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역사진행의 필연적 귀결이며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 12.12의 결단은 역사의 순행을 도운 정당한 행위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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