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가난한 미 공립학교

입력 1994-09-12 22:55:00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는 초중고 공립학교가 1백66개가 있다. 사립학교도40여개나 있으니 적잖은 셈이다. 그런데 공립학교중 48개교가 지난 6-8일새학기(미국은 새학기가 9월에 시작된다) 개학일을 맞았는데도 문을 열지 못했다.건물이 낡고 방화시설마저 허술해 적은 비에도 교실이 새는가 하면 언제 목조교실이 잿더미로 변할지 몰라 관할 대법원에서 먼저 고친후 개교를 하라고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평소 {세계의 수도}라고 큰소리를 쳐온 워싱턴 DC정부는 우선 개학을 한 후서둘러 보수를 하겠다고 법원에 통사정을 했으나 1주일이 지난 12일까지도흑인인 담당판사는 끝내 11개교는 문을 열지 못하도록 했다. 해당학교 6천여학생들은 인근에 놀고 있는 학교나 교회, 공공건물 등에서 셋방살이 수업을하고 있고 매일아침 아이들을 태워다 주어야 하는 학부모들은 제때 출근을할 수 없다며 아우성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물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재선유세에 혼이 빠져 있는 녀걸 켈리 DC시장도 체면이 말이 아니다.왜 워싱턴의 공립학교들이 이토록 빈민가로 변해 세계인의 비웃음을 사고 있을까.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예산부족이다. 하지만 그 뿌리깊은 이유는 바로 흑백간 인종차별 때문이다.

워싱턴에는 정부통령을 비롯, 상하원의원.연방정부 고급관리등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거물급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은 거의 전부가 사립대학 등록금 수준의 학비를 내고 자녀들을 사립초중고에 보내고 있다. 때문에 시내 공립학교는99%가 흑인학생들이고 그래서인지 시설 또한 형편없다. 2년전 대통령선거때공립학교 육성을 공약했던 클린턴도 백악관에서 코닿을 곳에 공립중학교를두고도 1시간정도 떨어진 사립중학에 외동딸 첼시양을 입학시켜 비난을 산적이 있다.

백인들, 심지어 돈많은 흑인들조차도 외면해 시내에 있는 공립학교는 무주택자, 가난한 흑인들 자녀만 모이게 되고 자연히 마약과 폭력이 들끓어 더욱 소외당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이번에 {먼저 보수를 하고 문을 열라}고 판결을 한 워싱턴DC 대법관카예 크리스틴은 일시적으로는 고통스럽지만 세상에 분노를 알려야 겠다는흑인들의 울분을 대신 토로했는지 모른다.

코흘리개 아들딸조차 미국에 유학시켜 놓고 우리의 교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감각한 한국이 힘세고 가진 사람들에게 상당한 교훈을 주는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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