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타인의 시간(26)

입력 1994-08-30 08:00:00

나는 소영이의 손을 잡고 달망진 걸음새로 슈퍼를 돌아 고샅을 빠져 나왔다.시장은 목욕탕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곧장 열려 있었다. 간혹 어머니를 따라가 보긴 했지만, 전에는 강 건너 불이던 국외지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들의 눈빛, 외침, 손길 하나하나가 정겹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막 붉은 점으로 환원된 신호대 밑에는 미처 붙좇지 못한 두 명의 행인이 아낙사레테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우리도 곧 아낙사레테가 되어 그들 곁에 서 있었다. 어린 아낙사레테가 신호를 기다리기가 무료했던지 촉감 좋은손 끝으로 내 엉덩이에 대고 번갈아 으뜸 삼화음을 짚어 보고 있었다. 나는사이프러스의 미소녀에게 내 엉덩이를 빌려준채 마음속으로 시장에서 살 거리를 꼼꼼히 따져 보고 있었다. 그런 때가 가장 막막해지는 순간이었다. 무엇을 얼마나 사야 할 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살아 계셨을 땐 그저 어머니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니기만 하면 되었고,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과 반찬을 때로는 투덜거리며 때로는 야살떨며 먹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왜 그때 어머니의 말씀을 좀더 귀 담아 듣지 않았을까.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여자는 손이 짜고 솜씨가 있어야 한다고.그러시면서 늘 총기 있을 때 익혀 두라고 이르셨다. 김치 담글 때도 그랬고알량한 두부찌개를 끓일 때도 그러셨다. 그건 이미 패스트 푸드나 인스턴트식품, 레토르트 식품에 길들여진 언니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어머니의 당조짐에는 안중에 없고 되레 구식 엄마라고 투덜거렸다. 그런 것들은 엄마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었다. 어쩌다 어머니가 어딜 가시고 안계실 때도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뽀르르 전화를 걸어 자장면이나 짬뽕 같은 걸 시켜 먹기 일쑤였다. 나의 첫 작품. 고두밥과 묘한 느낌의 두부찌개. 그때의 당혹감과 낭패감. 어머니의 빈 자리가 처음으로 분화구만큼 넓어보이던 순간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만큼 솜씨 좋은 분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때는 그것도 당연한 것인 줄 알았었다.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소영이가 나의손에 매달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천연덕스럽게 허밍으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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