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어드는 저녁-1나는 찬찬히 옷을 갈아 입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와 옷 매무새를 점검하고 방을 나오자 작은오빠의 나직한목소리가 안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 작은오빠가 석간 신문을 읽어드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접때 에멜무지로 그걸 읽어 드렸더니 아버지의 눈빛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며, 그후로 작은오빠는 석간 신문이 배달되면 그런부질없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밖은 완연한 저녁이었다.어느새 오월의 도타운 햇살이 엷어져 은은히 가라앉고 있었다. 이제 시장에 가는 일도 나의 자연스런 일과가 되었다. 요즘 들어언니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으므로 별 수 없이 내가 그 일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놀이터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놀고 있었으나 담벼락 밑의 소영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예쁘게 차려입었네.]
시장을 갔다 오던 준영 엄마가 나를 보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엄마가 의식적으로 추슬러주는 것 같아 싫었지만 내색 않고 목례를 했다.나는 아직도 그 엄마에 대해 꽁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어머니 일을 두고 제일 부풋하게 게거품을 문 여자가 그 엄마였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는 성당에도함께 다니고 친동생 이상으로 따랐던 여자였기에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엄마를 볼 때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곤 했다.소영은 페르골라 밑 벤치에 앉아 있었다. 송아리를 이룬 보라빛 등꽃 송이를알뜰히 헤아려보고 있는지 소영의 눈은 자심히 페르골라에 박혀 있었다. 아직도 거기 널브러져 있을 언니의 개짐을, 혹시 소영이가 본 게 아닐까 싶어나는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무성한 잎새의 여름이 가고 조락의 가을이 오면어쩔 수 없이 그 앤생이는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견딜 수 없는 수치스러움에 마냥 가슴이 뛴다. 그래서 나는 가을이 오기전에 드센 폭풍우가 몰아쳐 그 페르골라가 흔적없이 쓸려가기를 은근히 빌곤했다.
[소영이, 언니 따라 시장 갈래? 아이스크림 사줄께.]나는 소영의 눈을 흩뜨릴 요량으로 꼬드겼다. 그제서야 펀뜻 시선을 낮춘 소영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