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개방정책 선택

입력 1994-08-13 13:00:00

북한과 미국이 제네바 3단계회담에서 쌍방 수도에 외교대표부를 설치키로전격 합의한 것은 김정일의 대외정책이 {개방}쪽을 택하고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으로 풀이된다.이번 제네바회담 합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에 향후 양측의 협상과정을 더 지켜봐야 하지만 2차대전 종전과 6.25 전쟁이후 적대관계를 유지해온북미관계가 해빙으로 나아가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변화로여겨진다.

특히 이번 회담결과는 김일성사후 북한의 핵정책 뿐아니라 대외정책전반의흐름을 예측하는 시금석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제네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정부당국자들은 [북한의 대외정책이 일단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잠정적인판단을 내리고 있다.

핵정책을 포함한 김정일의 대외정책이 김일성에 비해 다소 {유화적}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은 김일성사망으로 중단된 제네바회담이 이달초 재개된 직후부터 제기됐던게 사실이다.

강석주외교부부부장등 북한 협상대표단의 태도가 지난해 6월과 7월의 제1,2단계회담 당시에 비해 눈에 띄게 협조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조짐이 곳곳에서엿보였다는 것이다.

북한은 우선 협상과정에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대체}나 {한미 합동군사훈련영구중단}등 그동안 단골메뉴처럼 주장하던 정치성 의제들을 이번에는 거론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극히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들만 거론하는 등 현안을 타결하려는 자세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또 경수로전환 지원과 폐연료봉 처리문제등 핵심현안에 대해서도 미국측이다른견해를 제시하면 이를 일축하기보다는 가능한한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수용해 보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번 회담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 체제를 보장받고경수로 전환등 {경제적 지원}을 제공받으려는 북한의 의도가 보다 분명하게드러났다는 것이다.

타결이 쉽지 않으리라던 당초의 대체적인 예상과 달리 제네바회담에서 이같은 합의도출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도 그렇지만 북한측도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문제를 풀어보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제네바회담에서 나타난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김정일의 대외정책이 서방과의관계를 개선하는등 문호를 여는데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예고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게 정부 당국자들의 견해이다.

이와관련, 정부 당국자는 [김일성은 식량난등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지만 김정일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따라서 김정일은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경제회복을 추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은 대미 관계개선의 윤곽이 어느정도 잡혀지면 곧이어 일본과의수교교섭에도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제네바회담 하나를 놓고 김정일이 개방지향적 대외정책을 구사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김정일이 체제안정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위해 미국과의 협상을 {결렬시키지않는} 차원에서 회담에 임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제네바회담의 합의사항이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기 보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앞으로 해결해야할 목표를 제시한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같은가능성도 전혀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할수 있다.

김일성사망으로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김정일로서는 국제사회의 압력고조를최대한 지연시키고 새로운 체제를 다지는데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전략상} 양보를 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북한이 폐연료봉을 이른바 {건식}으로 보관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은것은 일정기간이 지난후 언제든 연료봉을 다시 꺼내 재처리하기 위한 여지를남겨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또 경수로 전환사업도 완전히 마무리되기 까지는 10여년이라는 장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김정일의 핵정책은 언제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가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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