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적 총재회동 제의 배경.전망

입력 1994-08-12 00:00:00

대한적십자사 강영훈총재가 12일 남북적십자 총재나 부총재급 회동을 제의한것은 정부가 납북자송환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정부가 남북적십자회담의 재개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북한정치범수용소에구금된 인사중 고상문씨등 남한출신 11명이 포함돼 있다는 국제사면위원회의보고서가 발표되면서부터이다.고씨가 정치범수용소에 구금돼 있다는 것은 고씨가 {자진 입북했다}는 북한측 주장이 허위임을 여실히 입증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같은 명백한 인권유린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정부는 유엔인권위원회등 국제기구를 통한 해결방안과 함께 북한측과 직접협상을 벌이는 방안도 심도있게 논의, 우선 남북적십자회담 재개를추진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한때 남북당국자간 회담을 북한측에 제의하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중단된 남북간 대화창구를 다시 개설, 북한핵문제와 남북경협문제등 남북간 모든 현안을 논의하면서 납북자문제도 동시에해결하자는 것이다.

특히 통독전 서독이 동독에 물자를 지원하고 그 대가로 정치범을 석방시켰던전례를 참조, 물자등 경제적 지원과 납북자송환을 {바터}하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정일이 아직 노동당 총비서와 국가주석직에 취임하지 않는등 김일성사후의 북한의 후계권력구도가 확정되지 않은 점을 감안, 현단계에서는 민간차원의 대화가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이와관련, 강총재는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이성호 위원장대리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적십자회담 예비회담이나 본회담의 재개를 제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이 판문점에 설치된 남북연락사무소 우리측 연락관들의 교체사실을 통보하기 위한 전통문까지 접수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감안, 전통문 대신 성명을 통해 총재회동을 제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남북적십자 총재회동이 성사될 경우 우리측은 이산가족교류와 납북자송환문제를 북한측에 촉구할 것이 확실시된다.

강총재도 이날 대북성명에서 "이산가족들이 서로 편지를 교환하고 상봉하며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인도의 가교를 탄탄히 놓아야 한다"면서 "특히 남북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단 교환도 다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강총재는 또 "지금까지 납북된 우리측 인원들은 무려 4백명이 넘고 있다"고지적하고 "북한에 억류된 이같은 사람들은 생사와 소재가 밝혀져야 하며 이제라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이들 문제를 의제로 삼을 것임을분명히 했다.

우리측의 이같은 요구는 물론 북한측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북한은 이미 성명을 통해 "고씨는 자진입북했으며 북한에는 정치범이 없다"면서 "인권문제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 있다"고 국제사면위원회 보고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이어 고씨와 지난 71년 전서독대사관 노무관으로 일하다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유성근씨와 그 가족등을 동원, 방송매체에 출연시켜 납북사실을강력히 부인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11일에는 적십자회 대변인과의 기자회견을 통해 "남조선은 적십자 인도주의 사명에 맞게 미전향장기수인 김인서 함세환씨를 즉각 송환해야 한다"고 맞불작전을 펴기도 했다.

북한이 표면적으로는 알레르기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내심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르며 이 경우 적십자회담은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측이 총재회동에 호응해올 경우에 대비한 다각적인 대응책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측이 김인서.함세환노인등 미전향장기수들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점을 감안, 이들 장기수 문제와 납북자송환 문제를 일괄타결하는 협상전술도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태도로 미루어 볼때 북한측이 총재회동에 호응해 올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설사 회동이 이루어지더라도 이산가족과 납북자송환 문제가 해결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다만 이번 총재회동 제의는 김일성사망이후 처음으로 남북간 직접대화를 제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