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타인의 시간(4)

입력 1994-08-04 00:00:00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두달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꼭 한번 작은오빠를 실망시킨 일이 있었다. 은유에게서 받은 충격이 자심했던지 그날따라 그 고샅이유달리 낯설게 느껴졌었다. 토요일 오후였고,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햇살이눈부셨다.언제나처럼 고샅 입구에서 은유와 헤어진 나는 곧장 소영이네 학교 담벼락을따라 걸었다. 나의 지갑속에는 백원짜리 동전 하나만 들어 있었고 점심도 굶은 채였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직수굿이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머니의 사진을 묻을 장소를 찾고 있었다.

교문을 나서며 나는 무슨 마음이 냅떴던지 은유에게 예의 그 사진을 보여주었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그걸 사진첩 갈피에서 뽑아 내 수첩에 끼워 두고있었는데, 아마 은근히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무심코 그것을 받아든은유가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달떠서 나불거렸다.

[호호호, 승희언니 아니니. 근데 이걸 왜, 승혜 네가 가지고 있니?]나는 다시 한 번 잘 뜯어보라고 일렀다. 그래도 은유는 언니 것이 틀림없다며 자신의 부실한 눈썰미를 끝내 수정하지 않았다. 나는 속이 상해 한동안 뾰로통해 있다가 이윽고 낭창히 말했다.

[은유야, 너 참 눈이 나쁘구나. 그러면서 왜 안경은 안 쓰고 그러니. 이건나야]

그제서야 은유는 마지못해 인정해 주며 입술을 족족 빨았다. 그뿐이었다면그날 사진을 버릴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게다. 그런데 은유가 마침내 사진을 건네며 이렇게 콕 쥐어박는 것이었다.

[승혜 너도 꼬마 때 이렇게 예뻤었니. 근데, 어째 좀 고풍스럽다]그러잖아도 버릴 참이었는데 은유의 말을 듣고 나자 나의 마음은 더욱 굳어졌다. 어느 국민학교에 이르렀을 때, 사위는 어느 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그 국민학교 교정엔 화사하게 핀 두 그루의 목련나무가 있었다. 우리 학교교정에도 있는 그 꽃이 왜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던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나는 이끌리듯 들어가 그 꽃잎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꽃잎 하나를 따서 사진과 함께 묻으려고 잔디밭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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