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민자패배

입력 1994-08-03 12:58:00

대구수성갑, 경주시, 영월.평창 세지역에서 실시된 8.2보선은 신민.민주.민자당 후보들이 각각 당선돼 사이좋게 의석을 나눠가졌다. 무소속후보들은 일패도지했다.그러나 8.2보선은 민자당에게는 참담한 패배를 안겨주었고 민주당은 꿈에도그리던 영남지역에서 귀중한 지역구 의석을 확보하는 개가를 올렸다. 민자당은 당초 세지역의 보선에서 2승1패, 나아가 3승까지도 조심스럽게 기대했다.그런데 기대는 어이없이 무너졌고 결과는 영월.평창지역에서만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자당이 이처럼 완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야당측은 패인으로 문민정부의 국정수행능력 부족과 자만심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난해2월 김영삼대통령이취임한 뒤 새정부 출범초 사회전반에 대한 개혁이 단행됐을 때 국민들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일방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개혁에 대한 인기는 곧 시들해져갔다. 쌀수입개방을 둘러싼 UR파동, 북한핵문제 등 외교부문은 말할 것도 없고 물가문제 등 국내경제정책도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이처럼 실정이 거듭되자, 문민정부에 대한 장미빛 기대감은 서서히 실망감으로 변해갔다. '거품인기'가 걷히자 대구.경북지역에서 새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특히 높았다. '인사가 만사'라면서 등용한 인재들이 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도덕성에 하자가 발견돼 도중하차하기도 했으며 대구.경북출신을 거세하고 부산.경남출신을 중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번 보선에서 민주당 이상두후보의 당선은 최대 이변이다. 지역당 구도에볼모로 잡혀 민주당은 영남지역에선 후보조차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 전전 긍긍해왔다. 이번 보선에서도 경주의 이상두당선자와 대구수성갑의 권오선후보를 공천하기는 했으나 민주당은 애초 당선은 기대조차 않았다. 단지 제1야당이란 체면때문에 후보를 내지않을 수 없어 울며겨자먹기로 보선에 참여했을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주보선에서 이상두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민주당은 지역당 구도를 불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고무돼있다. 반민자 비민주로 규정된대구.경북지역의 정치구도를 바꿔놓아 민주당 입당을 꺼리던 지역의 참신한정치인재들이 민주당으로 몰려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상두후보의 당선으로 민주당에서 가장 크게 체면을 세운 사람은 누가 뭐래도 이기택대표다. 이대표는 그동안 당내 비주류로부터 끊임없이 지도력을의심받아왔고 이번 보선에서도 참패했을 경우 이대표는 민주당에서 설 땅이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보선에서 승리함에 따라 이대표는 당분간당내 불협화음을 잠재우고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서 신민당 현경자후보의 승리는 이미 선거초반부터 관측됐으나 득표차가 크지않을 것이란 예상이 적지않았다. 박철언전의원에 대한 동정여론이 박전의원의 지지층 일부에 그칠 것이란 분석아래 압승은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선거전에 들어가면서 박전의원에 대한 동정은 열렬 지지층을 통해 조금씩 확산되기는 했으나 그 한계는 금방 드러났다.

현당선자 진영이 반YS정서를 업고 선거초반부터 기세를 올릴 때도 민자당의정창화후보측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동정은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것이었다. 그런데 선거중반이후부터 YS의 전위대라고 할 수 있는 민자당내지역 민주계들조차 대구시민들의 짙은 반YS정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선거운동기간동안 민자당 선거운동원들은 정후보는 괜찮은데 현정권때문에 민자당후보를 찍지않겠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지난번 대선때 YS에게 찍은 표를 돌려달라는 소리도 나왔다. 그동안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대구정서가 이번 보선에서 반YS정서임이 확연히 드러난 셈이었다.

대구시민들이 김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원인은 여러가지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대구.경북지역에 대해 새정부가 끊어준 수표가 부도나거나 부실채권으로드러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속전철 대구구간의 지상화.지하화논란, 경주경마장 유치문제등 대구.경북지역 주민들을 자극하는일련의 정책들은 새정부의 거품인기를 이 지역에서 일찌감치 걷어갔고 이번보선에서 그 감정을 여지없이 표출시킨 것이다.

그러나 현당선자진영도 분명 깨달아야할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현당선자가 이번 보선에서 내세운 박전의원의 정치보복에 대한 대구시민들의 심판으로당선됐다는 판단은 대구시민들의 심중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이란 주장이다. 그보다는 김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현당선자쪽으로 몰려 몰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투표율이 40%대인 것도 박전의원측과 민자당 모두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란 주장도 있다.

어쨌던 이번 대구수성갑과 경주시 보선에서 민자당이 참패하고 신민당과 민주당이 승리했다. 보선결과에 따른 대구.경북지역의 향후 정치적 전망을 진단하는 것은 섣부른 면이 없지않다. 이 지역이 완전히 야도로 돌아섰다는 것보다는 여당에 대한 일시적인 반감의 표출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다만 분명한것은 여당의 아성이었던 대구.경북지역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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