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선인장이야기

입력 1994-07-26 00:00:00

에필로그 셋사람들이 난해하다고 이르는 시나 되새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부시시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얼굴을 씻고 옅은 화장을 하였다. 나이는 어쩔 수없는지 눈가에 기미가 돋아나 있었다. 나는 서둘러 세월의 흔적인 거뭇한 기미를 감추었다. 마무리 화장을 하고 제대로 눈여겨 본 적이 없는 내 얼굴을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사진 속의 아버지 모습, 입을 굳게 다문 어머니의 모습, 언제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던 준수의 모습, 해사하긴 해도 웃음이 드물었던 혜수의 모습, 아름답지만 신경질적인 구석이 있는 미수의 모습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게 뒤섞인 얼굴이었다. 거기에 나만의 독특한 얼굴 모습으로 약간 겁에 질린 듯한 모습이 보태진 얼굴이 피로에 지친 채 나는 건너다 보고 있었다. 나의 가족과완전히 동떨어진 얼굴이 아닌 데도 나는 언제나 아주 낯선 얼굴을 대하듯 이얼굴을 보고 있구나 싶어졌다.

[밥 다 차려 두었는데...]

어머니는 마흔 가까이나 나이를 먹은 노처녀 딸이 혹 한끼라도 밥을 거르게되지나 않을까 다시 한번 나를 채근하셨다. 어머니에게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옷장문을 열었다. 그리곤 망설이다가 보통의 경우라면 즐겨 입지도 않는원피스를 하나 찾아내어 입었다. 검은 색의 단순한 디자인이긴 해도 허리 밑부분이 꼿꼿한 주름이 잡힌데다 허리 둘레가 은박으로 처리되어 있어서 내가가진 옷 중에서는 제일 화려한 옷이라 남의 결혼식에 갈 때나 입는 옷이었다.나는 스타킹까지 갖춰 신고서 거울 앞에서 온몸을 비춰 보았다. 그저 맨 얼굴이나 감춘 정도인 옅은 화장을 한 얼굴이 옷과 덜 어울러 보였다. 밥을 먹고 조금 더 짙게 입술 연지를 발라야겠다고 생각하며 식탁에 앉자 어머니가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셨다.

[너 새옷 한벌 사야겠다. 그옷도 이젠 십년이 넘었구나]

어머니는 연민과 측은함이 뒤섞인 얼굴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숟가락을 들다말고 어머니를 건너다보니 윤기없이 퍼슬거리는 머리카락과 구부정한 몸매가도리어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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