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카리스마

입력 1994-07-21 00:00:00

북한의 김일성 1인독재체제가 49년만에 막을 내리고 왕조처럼 대를 이은 제2대 {수령}인 김정일시대가 출범했다.김정일은 김일성장례식에 이어 20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추도대회에서 전당.전군.전민의 {수반}으로 추대됐다.

북한은 금명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김일성사망으로 공석이된 국가주석에 김정일을 공식 선출하고 그를 당총비서로 추대할 예정이다.

김일성의 사망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며김정일시대의 개막은 한반도에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데 이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김일성이 상징했던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은 그의 사망과 함께 역사속의 한시대로 영원히 막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김일성 사망에 따른 여러 변수들을 다각적으로 점검, {종합적인 통일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힌 것은 바로 이같은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김일성의 사망이 한 철권통치자의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북한의 엄청난 변화의 시작으로 볼수 있으며 필연 남북관계와 한반도에도 변화의 파장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김정일시대의 개막이 곧 새로운 국면의 시작으로 바로 이어지기는단정하기는 빠르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계기는 충분히 될 수 있지만 곧바로 새로운 국면의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할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1인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아버지의 후광이었듯 그의 시대는김일성시대의 연장국면에 불과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북한은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 김일성시대에서 그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불과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특히 일부에서는 김정일시대가 북한 왕조정권의 마지막 정권이 될 것이라는견해도 나오고 있다. 곧바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정일이 독자적인 한 시대를 개척해 나가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정일은 김일성과 같이 북한 당.정.군을 완전 장악.통제하기 어려울뿐 아니라 경제난등 집권후 해결해야할 과제는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커다란 난관에부닥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정일은 아버지 역량의 5분의1도 안된다는 분석도 있는데다 지도자로서의카리스마는 조금도 물려받지 못한채 엄청난 부담만 떠안게된 셈이다.김정일체제의 지속기간이 길어야 3년, 짧으면 3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나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김일성은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었지만 김정일에게는 그런 점이 없다]면서 [그가 조금만 잘못을 해도 들고 일어서는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년전부터 치밀한 준비를 해 왔지만 김일성이 없는 김정일의 권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20일 열린 김일성추도대회를 지켜본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김정일의권력기반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이 추도사를 통해 김일성의 유지임을 강조, 김정일에대한 대를 이은 충성을 맹세하면서도 {당중앙위}를 여러차례 강조한 것은심상치 않다는 분석이다.

김일성의 유지에 따라 김정일을 1인자로 등극시키되 국정은 {당중앙위}라는기관을 통해 운영하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이라는 얘기다. 다시말해 김정일은 {얼굴마담}에 불과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권력기반이 이처럼 확고하지 못한 상황에서 김정일은 어느 것부터 손을 대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산적한 현안을 안고 있다.

식량난을 비롯한 북한의 경제사정은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고위층간부 뿐아니라 말단 당원에 이르기 까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부정과부패도 만연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9년이라는 장기 1인통치에서 비롯된 온갖 부조리와 불만이 그동안은 절대권력자의 카리스마에 묻혀 있었지만 언제든 한꺼번에 터질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것이다.

6공당시 안기부장을 지냈고 평양을 비밀방문 한 것으로 알려진 서동권씨는[김정일이 체제유지를 위해 우선 해결해야할 과제는 경제문제]라고 지적하고[김일성과 달리 김정일은 주민들의 배를 실제로 부르게 해주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서씨가 당장의 현안으로 지적한 경제활성화와 체제유지는 그러나 동시에 추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방을 해야 하지만 개방을 하면 체제약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김정일이 당장 직면한 이중적인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그의시대가 과도기인지, 마지막 정권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개막인지에 대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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