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는 혜수의 어린시절을 돌이켜 보았다. 어느새창이 희부윰해져 있었다. 나는 아예 새벽산에 오를 생각을 하고 운동화의 끈을 조였다. 혜수가 집을 떠나는 모습만은 지켜 보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에게도 혜수가 떠난 다음 상황을 알리려는 계산에서였다.마침 일요일이라 일찍 일어나셔서 성경책을 읽고 계신 어머니에게 우유 한컵을 가져다 드리곤 산에 갔다 오겠노라고 횡하니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시다가도 일요일만 되면 어디서 힘이 나는지 미수의 부축을 받으면서라도 교회엔 꼬박꼬박 나가시는 거였다. 혜수는 아마 어머니가안 계신 틈을 타서 집을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산중턱에 앉아 나는 더는 산을 오를 생각을 그만 두고 망연자실 시가지 전경만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여러번 산을 찾았지만 혼자 산을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바람도 밤새 깊고 단 잠을 잤는지 아주 상쾌하게 불어 왔다. 피로가 확밀려왔다. 숲에 깃들어 잠이라도 자 버렸으면 싶은 걸 참고 애써 중턱에 있는 절을 찾아 나는 차고 단 약수를 한 바가지나 쿨컥여 마셨다.물을 마시고 잠시 풍경소리를 듣고 있자니 지난 밤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던갖가지 번뇌로부터 감쪽같이 벗어나는 것만 같았다. 바람의 올올이 나의 머릿결과 나뭇잎들을 스쳐 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마치 새벽녘 새들이 둥지를박차고 첫비상을 하듯 온갖 잡동사니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을 빠져 날아 나가는 것 같았다. 아주 상쾌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혜수의 마음 자락의 그 그늘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산을 내려오면서 잠시 들었지만 나는 나무숲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에 마음을 온통 빼앗긴 채였다. 모든 것이 아주짧은 찰나, 이곳에 머물다 가는 것이다. 저 투명한 아침햇살도, 온몸에 이슬을 매달고 수줍은듯 피어난 작은 풀들도..... 아주 잠시, 아주 잠깐씩만 그존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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