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선인장이야기(80)

입력 1994-07-05 08:00:00

혜수의 일이 좀 터무니없어서 그러는 거겠지. 제가 이 집의 가장 역할을 실제로 맡아야 하는데도 방향도 안 서고 그래서 고민되는 게 좀 많겠니? 좀 정리될 때까지 모른 척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물론 걱정되지 않는 게 아니면서도 그렇게 말하며 나는 미수의 걱정을 지나치다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왠지 뭔가 잘못되어 가는 일들이 많다고 생각하기가 싫었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일도 많다 싶어서였다.개학을 사흘 앞둔 날의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준수의 일을 언제까지나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려고만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혜수의 일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끔찍한 그 일은 일어났다.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우리 가족에게 가져다 주었던 그 일이-.

우리 식구 중 누구도 준수가 팬티까지 벗어버린 알몸으로 홑이불을 온몸에걸치고 집을 나서는 걸 지켜본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자리보전 중이셨고 미수는 약혼자와 저녁 약속을 해두었다고 외출했고 혜수는 연극 공연을 하러 가고 없었다. 나는 집에 있었으나 샤워 중이었다.

그날, 나는 해가 질 무렵부터 내내 무언가 가슴을 꽉 내리 누르는 것 같은느낌에 휩싸여 있었다. 또다시 학교에 나가게 되고 그러면 이 괴상망측한 여름도 끝나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창밖에 시선을 두고 나는 한손으로 줄곧가슴께에 힘을 주며 그 뜻하지 않은 통증을 달래다가 샤워라도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물을 틀었던 것이었다.

준수는 후덥한 여름 날씨인데도 제 방문을 꼭 잠그고 틀어박혀서 온 종일을보내더니 오후에 나와 부딪치자 삐죽, 나에게 한번 웃어 보였다.준수야. 언제 한번 그 아가씨 집으로 안데려 올거니?

어머니의 얼굴이며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 드리고 안방에서 막 거실로 나서다가 준수를 보며 내가 말했을 때도 준수는 딴전이었다.

그가......정열을 기울인 것은, 젊은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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