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파업이 남긴 앙금

입력 1994-06-29 00:00:00

27일 오후5시 대구기관차사무소 앞마당.대책회의를 하다 휴식을 취하는 1백여 기관사들의 표정은 어두웠다.복귀신고를 한뒤 48시간 이내에 열차운행에 참가하겠다는 출무신고를 내야하는데다 오전10시 철도청장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강경입장을 다시한번 확인했기 때문.

[국민들을 볼모로 무작정 우리의 요구관철만을 위해 파업을 한 것은 아닙니다. 기관사들의 근로조건개선이 승객들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판단에 따라 열차운행을 중단했지만 남은 것은 따가운 비난 뿐이었습니다]이날 모인 기관사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는 완전히 묵살한 채 생계를 담보로 무조건 항복을 강요하는 것에 울분을 토해냈다.

정부의 강경조치가 여론의 호응을 받을수록 이들의 주장은 점차 힘을 잃어갔고 대열에서 빠져나가는 기관사들도 늘어났다.

실직을 우려한 가족들이 본인 대신 복귀신고서를 제출, 기관사들 사이에 불신의 골도 깊어졌다.

27일 운행에 참가한 20명의 기관사와 출무신고를 낸 50여명에 대한 눈길도그다지 곱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는 파업을 시작한 당위보다 내부에서 닥칠 실망과 회의가 더큰 문제로 다가왔다.

오후 6시쯤 대책회의가 끝나고 기관사들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번 상황이 끝나면 다시 아무도 봐주지 않는 음지로 돌아가겠지만 기관차의 열기와 쏟아지는 졸음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동료들 사이에 남을 상처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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