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 정상회담의 조건

입력 1994-06-20 00:00:00

"언제 어디서든 조건없이 빠른 시일내에 김영삼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김일성주석의 제안에 진실은 몇 퍼센트쯤 섞여 있을까. 방북한 지미 카터전미국대통령을 통해 북한의 김주석이 갑작스레 제기한 이 제안에 대해 김대통령도즉각 수락함으로써 얼어 붙기만 하던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풀릴 기미를 보이고 있다.김주석의 이같은 제안이 여태까지 남북한대화에 걸림돌 역할을 해온 정치적복선만 배제될 수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세계의 질서는냉전시대가 끝나고 화해무드가 무르익고 있으나 유독 한반도만은 북한의 핵문제로 인하여 대화는 단절되었고 긴장은 날로 고조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런시점에서 제기된 남북정상회담은 {가뭄끝에 단비}로 어떤 이의도 이유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3공때부터 우리가 제의한 남북정상회담을 외면하거나 반대해온 김일성주석이 핵제재논의가 막바지에 이른 이때 느닷없이 정상의 만남을 먼저 제의한데는 낚시바늘을 감춘것 같은 사술이 끼여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주석의 속셈은 국제사회의 핵제재를 피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이란 위장된 평화의지의 기치를 한번쯤 들어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볼수 있다.

김주석은 카터전미국대통령을 맞아 정작 본론인 핵개발 상황은 숨겨둔채 국제원자력기구와 핵확산금지조약에의 잔류, 핵감시장치 허용, 사찰요원 상주허용, 실종미군유해수색기구 설치등 각론만 제시한 것만 봐도 알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조건없이} 만나는 동안에는 대북제재가 유보되거나 국제사회의의지가 약화되기때문에 김주석은 그것을 노리고 정상회담을 제의했다고 봐야할것이다.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민족의 장래와 한반도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뜻에서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면 지금까지 취해온 미.북한간 회담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부터 수정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입으로는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했지만 그들의 기본정책은 한치도 변하지 않았으며 미국과 벌일3단계 고위급 회담이 북한측의 유일한 화두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핵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별도로 논의되었던 남북한특사교환도 그 목적은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데 있었지만 북측대표의 {서울 불바다론}으로 무산되고말았다. 어쩌면 무지개같이 멀리 보이긴 하지만 실체를 좀처럼 잡을수 없는남북정상회담은 신중하게 고려된 끝에 열려야지 즉흥적으로 개최될수 없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는 아무런 조건이 있을수 없지만 최소한의 기본 양식을 갖춘다음에 회담에 임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핵의 투명성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삼대통령의 즉각적인 수락은 북한의 함정을고려치 않은 점이 있지 않았나 그걸 우려해보는 것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