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전대책확정 의의 우리농어촌 되살리기

입력 1994-06-14 00:00:00

정부가 작년말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이후 6개월 가량 작업을 벌여온 향후14년간의 장단기 농어촌발전대책이 최종 확정됐다.이번 농어촌발전대책은 쌀을 비롯한 모든 농산물의 개방으로 위기를 맞고있는 농어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농어촌을 쾌적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며농어민에게 충분한 복지혜택을 부여해 주민들이 돌아오는 농어촌을 만들자는 것을 근본취지로 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도시로 떠나는 농민들이 해마다 40여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앞으로 농산물 개방이 확대되면 농어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농어촌은 공동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이번 대책이 마련된 것이다.이 대책은 개방에 따른 농민들의 피해를 충분히 보상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니지만 현실여건하에서 우리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대부분 망라했다고 할수 있다.

따라서 이번 농어촌발전대책은 과거 몇차례 마련된 농어촌대책과 다른 특징이 있다.

우선 과거의 농어촌대책은 일부 부처의 주도하에 단편적인 방안을 제시하는데 그쳤으나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선 가운데 범정부적으로 작업이 추진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대책에는 단순히 농업경쟁력 강화분야 뿐만 아니라 농민들이실질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교육, 연금, 의료서비스 개선 등 농어촌생활환경 개선에도 상당한 비중이 두어졌다.

또 농산물 개방에 따른 농민들의 충격을 최소화해야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이번 대책수립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도시인들은 향후 10년간 15조원의 농어촌특별세를 부담해야 한다는데 별다른저항을 하지 않고있다.

또 도시인과의 형평성문제를 유발할 소지가 큰 농어촌학생 대학특례입학,농어민 연금제, 의료보험 지원확대 등도 정부가 이를 과감히 수용키로 하는특단의 조치를 취했다는 점은 농어민들이 평가해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있다.

또 하나는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정부가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농어민은물론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수렴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정부는 지난 2월 농어민, 학계, 언론계, 재계, 소비자대표 등으로 구성된농어촌발전위원회를 대통령자문기구로 설치했으며 이 위원회는 농어민들의 의견을 토대로 4개월가량의 작업끝에 농어촌발전을 위한 개혁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농어촌 발전위원회는 모두 129건의 과제를 정부에 건의했으며 이가운데 부처간의 이해가 상충되지않고 재정여건이 허락하는 114건은 수용했다.앞으로 이번 대책이 차질없이 시행되려면 몇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만하며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대책으로 끝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없다.

먼저 정부의 강력한 실천의지가 없으면 농어촌발전대책은 탁상공론에 그쳐과거와 같은 농정불신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시작된 지난 86년이후 지금까지 9차례에 걸쳐크고 작은 농어촌대책을 수립했으나 여러가지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대책이 변질되거나 유야무야된 사례가 많았다.

특히 이번 농어촌발전대책 수립에 참여한 관계부처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협조가 대책의 성공적인 시행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최인기농림수산부장관은 이번 대책을 마련하는데 가장 큰 애로사항은 일일이관계부처 장관을 설득하고 부탁을 하는 일이었다고 실토했다.대통령이 대책수립에 적극 협력할 것을 수차례 내각에 지시했지만 관계부처에서는 일일이 문제점만을 열거하면서 수용하는데 인색한 입장을 표명했다.따라서 앞으로 관계부처가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수립할 때는 부처이기주의를버리고 우리 농어촌을 살리겠다는 목표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촉구된다.농민들도 정부에 의존하겠다는 타성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경쟁력을 높여나가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으로 요망된다.정부는 이번 대책을 수립하면서 지난해의 신농정추진계획에서 강조했던 것과같이 농어민 지원사업을 농어민 자율방식으로 추진키로 했다.즉, 중앙정부는 대상사업의 내용과 조건만을 제시하고 지방정부와 농어민은스스로 사업을 선택하고 집행하도록 체계화하며 자율추진 사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공개평가를 실시키로 했다.

또 농어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프로정신을 갖춘 농어업 전문경영주체15만 가구를 육성하며 이들을 우리농업 발전의 선봉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농어민들이 뒷짐을 지고 정부의 처분만을 바란다면 우리농업은 결코발전할 수 없으며 개방의 파고를 넘을 수가 없다.

정부가 아무리 훌륭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더라도 환자가 병을 극복하겠다는의지가 부족하다면 치료는 그만큼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번 대책 가운데는 또 정부가 정치적 결단을 유보한 채 또 다시 공청회 등여론 수렴과정을 거치겠다는 엉거주춤한 입장을 표명한 사안이 많아 농정불신의 소지를 안고 있다.

정부는 이미 농지법 제정안을 확정해놓고도 농지의 소유 및 이용규제를 대폭완화할 경우 농지투기를 유발한다는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공청회를 거쳐 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정부는 또 농.수.축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며 단계적으로 별도은행으로 독립시키는 문제는 공청회등을 거쳐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살기좋은 농어촌을 건설하겠다는 장미빛 청사진은 화려하게 제시됐으나 또다시 정부가 시행을 유보한 채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거나 농민들이 시대적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관자적 입장에 서게 된다면 우리의 농어촌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