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선인장이야기(57)

입력 1994-06-08 08:00:00

혜수는 그런 우리들을 옆으로 밀치며 아무 일 아니라는듯 집을 나섰다. 혜수가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정신이 들었다. 커피를 한잔 타 식탁에 앉아미수에게 어쩌면 좋겠느냐는 눈길을 보냈다. 제 커피를 타 미수도 나와 마주 앉았지만 그저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한동안 아무말없이 우리는 커피만들이켰다.[언니. 혜수 걔, 결혼하겠대?]

미수가 나지막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비로소 나는 사태가 썩 심각하구나 싶어졌고 이 일에 관해서만큼은 그냥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그간 혜수의 일에 통 무심했었구나. 혜수가 만나고 있는 그 남자에 대해서도 좀 더자세히 알아봐야겠는데, 하는 생각들도 앞뒤없이 떠 올랐다. 문득 아버지가살아 계셨어도 미수나 혜수가 마찬가지 방식으로 살아갈까 하는 생각도 났다.아무렇지 않은듯 혜수만 탓하고 있는 미수도 보기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미수에게 공연히 벌컥 화를 내었다.

[도대체, 너희들은 어떻게 된 애들이니? 아버지께서 이런 사실들을 알면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시겠다. 요즘 애들은 다 그래? 앞뒤 생각이 그렇게들없어?]

미수는 뭔가 반박하려다 참으며 나를 딱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곤 감정을 무척 절제하고 있다는 듯 딱 잘라 한마디 하였다.[언니는 그런 생각만 해? 체면이라든가 도덕같은 것으로만 모든 걸 재는 거야? 언니 생각도 남들처럼 그렇게 구태의연한 것이었어? 난 언니만큼은 혜수에 대해서 좀 다르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혜수 몸부터 걱정해야 하는 거아냐? 저 몸으로 연극이라니...]

[나라고 뭐 다를 줄 알았니? 너도 좀 조심해]

나는 엉뚱하게 미수에게 화풀이 삼아 톡 쏘아 붙이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내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활짝 열어 제치곤 아무렇게나 드러 누웠다. 미로에 빠진 것 같았다.

언제나 나는 인생을 잠시 머물다 가는 것처럼 여기곤 했지, 드러 누우며 나는 엉뚱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