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조기유학 무엇이 문제인가

입력 1994-05-27 00:00:00

한약협회 서울시지부장 박순태씨(48) 부부가 미국 유학에 실패한 친아들에게무자비하게 살해된 사건은 무분별한 해외유학이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 {살인극}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에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특히 이번 사건은 천륜을 저버린 발륜아가 저지른 {일가의 비극}을 뛰어넘어우리사회에 만연한 그릇된 교육열과 학벌위주 풍토, 바늘구멍의 대학입시제도, 빈부격차의 실상 등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이에따라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지금부터라도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도덕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하며 학벌따기식의 무분별한 해외유학은 차제에 제도적 보완을 통해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사실 이번 사건이 있기 전에도 특별한 목적과 사전준비도 없이 무분별하게해외유학길에 오른 20대 전후 학생들의 잦은 탈선과 방황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외국 현지와 국내에서 적잖은 사회적 물의를 빚어 왔다.그도그럴 것이 치열한 국내 대학입시의 관문에서 밀려나 취업이나 결혼을 위한 {간판}을 따기 위해 부모에게 떠밀리다시피해 기초적인 어학능력조차 없이조기 해외유학을 떠난 부유층 자녀들이 상당수에 이르기 때문이다.지난 92년 말 현재 석.학사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유학생은 3만여명에 이르며 여기에 어학연수 등 단기유학생까지 합치면 5만여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유학의 경우 어학연수원 입학에는 토플점수는 필요없고 1천5백만원정도의 재정능력을 갖춘 보증인을 내세울 경우, 누구나 등록이 가능해 부유층 자녀들이 손쉽게 유학길에 오를 수 있어 무분별한 유학의 {파라다이스}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다 서울 강남.종로일대에 밀집한 1백60여개 어학원들이 부유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조기유학을 권유하고 있는 현실도 무분별한 해외유학 붐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솔직한 고백이다.

지난 89년 해외여행자유화 조치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해외유학생들은 올해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데 학문탐구에 대한 진지한 모색보다는 외국대학 졸업장을 거머쥐기 위한 왜곡된 유학이 대부분인 것도 이런 사정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유학 동기나 절차 그 자체보다 대부분이 유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한다는데 있다.

조기 유학생들은 대학에 입학, 본격적인 학문을 쌓기에 앞서 대개 현지적응을 위해 대학부설 어학원에 등록해 짧게는 수개월부터 길게는 1-2년을 어학연수를 받게되나 대부분은 언어장벽과 문화적 충격으로 인해 제풀에 무너져 대학진학은 아예 포기하고 현지 어학원에 적만 올려놓은 채 도박, 성범죄, 마약등 방탕한 길로 빠져들어 허송세월을 하는 사례가 허다는 것이다.이번 사건의 범인 박한상씨(23)의 유학생활은 이같은 타락과 방황의 길로 빠지는 유학생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는 국내에서 대학을 휴학한뒤 지난해 8월 돈많은 부모의 덕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LA근교의 프레즈노 퍼시픽 칼리지부설 어학원에 등록하면서 미국유학의 첫발을 내디뎠다.

박씨는 그러나 불과 한달도 안돼 집 근처에서 같은 유학생 친구들과 포커게임을 하며 서서히 도박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 지난해 말에는 라스베이가스도박장까지 진출해 포커도박을 하다 결국 5천달러(한화 4백만원 상당)를 탕진했으며 부모 몰래 귀국, 국내에서 신용카드 외상대출을 받는 등 걷잡을 수 없이 타락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또 지난해 가을 미국 뉴저지주의 {야호칸}이란 일본인이 경영하는 쇼핑센터앞에서 한국인 조기유학생 1명이 일본 여대생을 납치, 성폭행한 사건도 박씨의 경우와 비슷한 유형의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한국인 조기 유학생이 많이 다니는학교는 {수준이 떨어지는 학교}라는 선입견을 갖고 자녀들의 입학을 기피하는등 전체적으로 한국 유학생들의 이미지는 땅에 떨어진 상태라는 것.이들은 주로 방학때 일시귀국, 국내 친구들에게 {미국물}에 젖은 불건전한사고방식과 행동을 보여주며 {영웅}으로 행세, 사회적으로는 이른바 {수입오렌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영국등지에 유학했던 재벌과 사회 고위층 인사를 부모로 둔일부 유학생들이 부모 몰래 일시 귀국해 강남에서 고급승용차를 타고 가다 앞으로 끼어든 소형차 운전자를 집단폭행한 사건도 {해외유학파}들의 일그러진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무분별한 해외유학의 병폐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나 교육부는 이번달 말부터 자비유학 외국어시험을 폐지, 고졸학력이상 소지자도 유학기관의 입학허가서만 받으면 해외유학 길에 오를 수 있는 길을 터줘 앞으로유학생들의 더 많은 탈선과 방황이 발생할 개연성을 높게 해주고 있다.교육부는 국제화.개방화및 여행자유화 시대를 맞아 선진학문, 기술습득, 외국문화이해 기회를 확대하는등 국민에게 자유롭고 다양한 유학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요건을 완화했다고는 하나 우리나라의 왜곡된 유학실태를 간과한 조치로 받아 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약업사 부부 살해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하게 계속돼 왔던 해외유학문제는 사회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올바른 {해법}을 도출해 내야 할 시점에왔다는 지적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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