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날의 긴 해가 남아 있어 집을 나서자마자 훅 더운 열기가 나를 뒤덮었다. 끈적거리는 땀을 연신 닦으며 나는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가 달리는동안 나는 줄곧 하나의 음률을 입속으로 흥얼거렸다.아아아아아아-. 내가 흥얼거린 것은 레드 제플린이 연주한 {캐쉬미르}였다.나는 나도 모르게 같은 음률을 되풀이하고 있었던게 잠시 기이하다고 느꼈지만 까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의 나무로 된 입구 앞에 서 있는 걸 깨닫고는 곧 캐쉬미르의 음률 따위는 잊어 버렸다.
내 생각대로 혜수가 이곳에 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도 전혀 눈치채지못했다. 나도 꼭 혜수랑 같이 앉을 생각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자리를 지켜볼 수 있는 자리를 택해 혼자 앉았다. 열대 나무를 심어둔 화분이 가로 놓여 있어 혜수쪽에서 신경만 크게 쓰지 않는다면 들킬 염려도 없었다. 차 한잔을 시키면서 나는 혜수의 모습을 훔쳐 보았다.
혼자 앉아 있던 혜수앞에 전에 보았던 그 남자가 와서 앉은 건 내가 시집 한권을 다 읽어갈 때 쯤이었다. 늘 가방에 읽을 거리를 넣어 다닌탓에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 혜수를 보다가 읽기 시작한 것이었다. 혜수는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무슨 생각인가를 골똘히 하며 거의 한 시간을 보냈다.
얼굴 표정만으론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심호흡을 하며책이나 읽자고 작정한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내가 왜 이렇게 어이없게 혜수의 뒤를 쫓고 있는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좋았다.혜수는 내 보기에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미수는 대학교 일이학년 때에 말할수 없이 예뻐 보이더니 요즘은 자꾸 수척해져 보여 더는 한창때라는 느낌이안 들었다. 한데 같은 나이고 쌍둥이인데도 혜수는 이상했다. 이제 혜수나미수의 나이도 적지 않아 길거리의 앳된 아이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싱그러운 아름다움은 사라질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혜수의 얼굴은 마리 로랑생의 그림 속 처녀처럼 보였다. 얼굴은 해사하고 눈동자는 크게 넘쳐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