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남자가 더 부끄러워 하더라

입력 1994-05-16 08:00: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지금 기억으로는 80년대 초. 대구가 아닌 타 도시에서 3년쯤 보따리 장사를했을때의 이야기다.그때 내가 가르쳤던 과목은 {소묘}였는데 {누드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그반은 남녀 학생이 반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중 나보다 나이가 많은 장가를 간 학생도 서너명이 있었다.

누드수업 전에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벗은 여인을 앞에 두고 수업하기가 힘들지나 않을까. 더구나 남학생이 많은 강의실에서... 라는 우스운 걱정을 하면서 학교로 갔었다.

가슴이 약간 처지고 머리가 길고 이쁘지는 않지만 피부색이 매력적인 모델이옷하나 걸치지 않고, 반쯤 누워 포즈를 취하고...

순간 강의실은 조용해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막상 수업이 시작되고 나니 부끄러워 고개를 못들줄 알았던 여학생들은 오히려 차분히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런데 남학생들은 거의 반 정도가 {약속}이나 한듯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강의실을 돌면서 한 남학생 옆으로 다가 갔을때, 연필을 쥐고 있는 손은 옆사람이 의식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또 부끄러워 모델을 쳐다 보지도 못하고...

내가 생각했을때 누드수업을 하면 오히려 남학생들은 호기심이 가득차 벗은여인의 모습을 열심히 바라보리라 생각했었는데...

처음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은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 떨리는 선 몇 가닥만 그어놓고...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더욱 {어른}이 되어 갈때, 벗은 여인을 보고 부끄러워고개를 들지 못하던 {순진함}이 삶의 오염속에 겹겹이 두꺼운 옷을 입어 가겠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