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동학농민전쟁의 자취를간다 (상)

입력 1994-04-28 00:00:00

4월21일 정오 무렵 전북 정읍군 고부들판.사방이 탁 트인 평야지대 위로 따가운 봄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막 일손을거둔 농민들이 논둑에 차려진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UR태풍에 시름도 많을 농부들은 오히려 평안한 모습으로 일상적인 하루를변함없이 보내고 있었고 근처에는 이곳이 1백년전 동학농민전쟁의 시발점이었음을 알리는 만석보유지비가 덩그라니 서 있었다.

동학농민전쟁(학계에서는 명칭과 관련, 동학혁명이라 불러야 된다는 주장도있음)은 1894년 1월 10일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이 물세 명목으로 농민들을쥐어짜자 전봉준의 주도로 말목장터에서 궐기,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간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내건 역사적 사건이었다.대구에서 88고속도로를 이용, 3시간여를 달려 전주에 들르면 전주 시내의용머리고개와 풍남문을 볼 수 있다. 용머리고개는 농민군이 고부궐기후 3개월뒤인 1894년 4월 하순 정읍에서 전주성을 공략하기 위해 들어왔던 전주의 관문이 되는 지역이고 풍남문은 전주성의 남문으로 보물 제308호이다. 동학군은이 풍남문을 통해서 전주성을 함락했다.

전주에서 서북으로 12Km 떨어진 삼례(완주군 삼례읍)는 전주에서 차로 2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삼례는 일본군이 국내로 들어오게 되자 이에 자극받은 전봉준등이 2차 기병을 한 장소이다.

삼례 주민들은 최근 논의가 되고 있는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해 이 지역이전주시로 편입되는 것이 주요 관심사다. 인근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인이 지역 삼례역은 한적한 시골역으로 동네 개가 노닐고 있었고 역사앞에는조선왕조 시대 수령들의 선정비가 오랜 세월의 무게를 딛고 서 있다.칠순의 박의초옹은 [옛날에 어른들한테 동학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으나 내용은 잘 모른다]며 [농민들이 못된 관리들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지...]라고 말했다.

삼례에서 호남고속도로에 올라 30여분쯤 달리다 태인인터체인지에 접어들면신태인읍이 나오는데 동학농민전쟁의 발발지역 유적지들을 찾아볼 수 있다.이 지역에는 만석보유적지, 황토재, 말목장터, 조소마을, 신중리 주산마을,고부관아, 백산등 농민전쟁과 관련된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다. 이 일대는 사통팔달로 도로가 연결돼 있어 만석보-말목장터-황토재-주산마을-고부관아-백산-조소마을순으로 돌아보는데 한나절의 시간이면 충분하다.정읍군 이평면 두지리에 있는 말목장터는 농민들이 최초 봉기한 장소로 현재는 식당과 구멍가게, 농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곳에는 수령이 170년이상 될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21m의 소나무가 우뚝 서서 그날의 생생함을 전하는 듯 하다.

말목장터에서 정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황토재는 농민군이 전주감영군을 상대로 유인작전을 펴서 승리를 거둔 곳이다. 1963년에 세워진 기념탑과 84년에조성된 기념관이 있는데 기념관 안에는 당시 5공정권이 애용하던 {정화}라는말이 {황토현전적지 정화기념비}에 쓰여져 있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옛날의 사연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기념관앞에는 소풍나온 중학생들이 오락시간중 랩음악에 맞춰 전문댄서 뺨치는 춤을 추고 있었다.

고부에서 정주쪽으로 나오다가 입석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2km 정도 시골길을 달리면 신중리 주산마을이 나타난다. 이 곳은 농민전쟁 지도자들이 당시사발통문으로 거사를 계획하던 곳으로 현재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동학혁명모의탑}에는 주동자를 알지 못하도록 원형으로 참가자들이 서명을 한 모형조각이 눈에 띈다.

말목장터와 주산마을 사이에 있는 고부관아는 당시 농민 수탈의 본거지라고할 수 있는 곳으로 지금은 고부국민학교가 들어서 있다.

농민군의 본진이 있었던 곳인 백산(부안군 백산면)은 해발 47m의 나지막한야산이지만 주변 사방 수십리의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현재 성터 흔적이 남아있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산으로 올라가는 진입로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인데 곧 채석장이 들어서게 돼 백산 자체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도 주민들 사이에선 나돌고 있다.

말목장터에서 2km쯤 창동리쪽으로 가다보면 전봉준이 고부봉기때까지 살았다는 옛집이 있는 조소마을이 나온다. 새집처럼 오목하게 들어앉았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이 마을의 전봉준 고가는 마당이 잔디로 조성돼 오히려 어색한 느낌을 준다.

동학농민전쟁 발발지역의 유적지는 {동학란}으로 오랜 동안 외면당해왔던 사실에서 보듯 부실한 기념비 위주로 조성, 더욱 알차고 내용있는 조형물과 전시품이 축조되거나 수집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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