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학파의 2대산맥인 퇴계학파와 남명학파를 형성시킨 이황과 조식은 기질이나 학문자세 현실대응처세등에서 어떤 차이점을 나타낼까.영남대 이수건교수(국사학과)는 최근 경북대 퇴계연구소가 펴낸 연구논문집{한국의 철학}에 기고한 {조선조 영남학파의 형성과 그 전개}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1501년생으로 동갑인 이퇴계와 조남명의 학풍을 비교했다.이교수는 퇴계학파와 남명학파를 형성한 이들 두학자의 위상과 두학파의 형세는 인조반정이후에는 큰격차가 있게 되었지만 두학자의 생시에는 그 형세가대등하여 양쪽을 넘나드는 학도와 관인들이 많았다고 소개했다.이교수는 퇴계학파가 안동을 중심한 경상좌도및 우도의 상주권과 청량산 소백산을, 남명학파는 진주를 중심한 경상우도및 하도의 일부지방과 지리산을각각 지역적배경으로 하고있어 퇴계학통을 계승했던 이익이 이같은 출신지역배경에 따라 퇴계의 학문은 바다처럼 넓음에 비긴다면 남명의 기질은 태산처럼 높음에 견줄만한 것이라고 평가했었다고 밝혔다.이교수는 퇴계의 경우 크고작은 과거를 거쳐 고관요직을 두루 역임한 끝에명종말과 선조초에는 정계와 학계에 주도권을 장악한 신진사류의 영수로서 조야의 숭앙을 한몸에 받고있었고 이에따라 당대를 주름잡던 학자와 관인들이대개 그의 문하를 출입하게돼 퇴계학파는 그기반이 경상좌도에 국한되지않고거의 전국을 포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 퇴계는 사화때마다 극단적인 대립을 피하는등 일생을 온건하게 처신하여당대 또는 후대인으로부터 소극적?퇴영적 처세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당대 제일의 성리학자로서 사림정치의 정착을 위해 혼신을 쏟았다고 평가했다.이에반해 남명은 중도에 과거를 포기했고 대쪽같은 성품으로 경의사상과 무실력행을 강조했으며 수차의 상소에서 척족세력의 폐해를 상소하는등 시종 솔직하고 과격한 언사로서 직언했고 불의를 참지못하는 이같은 현실대응자세로인해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는 그의 문하생들이 대거 의병의 깃발을 들고일어나게 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남명학파는 당시 진부한 정계와 학계에 청량제가 되었고 그러한 특징은 임란의 의병활동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나 현실에대한 저돌적인 자세로인해 잇따른 사화에서 남명의 문하생들이 큰 희생을 당했다고 이교수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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