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리 전격경질 배경.의미

입력 1994-04-23 12:54:00

이회창총리의 사임은 집권 1년 남짓한 시기에 한차례의 대폭 개각과 총리와부총리를 두번이나 바꾸지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정부, 여권에 적지않은정치적 상처를 안겨주었다.문민정부에서는 그동안 황인성, 이회창등 2명의 총리와 이경식, 한완상, 이영덕등 3명의 부총리가 이런저런 이유로 자리를 바꾸어 앉아야 했다.더욱이 이번사태는 또 부처간의 혼선과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통일안보정책과 관련된 정부내의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상처는 더욱깊을 수밖에 없다. 직접적 계기는 이총리가 이영덕부총리와 한승주외무장관에게 주요정책 결정을 사전보고하지 않은 점을 공개질책한 것이지만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조정된 안건도 사전에 총리의 승인을 받아 시행하라]는이총리의 지시에는 국정의 대소사가 청와대를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는데 대한강한 불만이 깔려있다는 것이 일반의 관측이다.

이번 사태로 특히 곤란을 겪게된 것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집권핵심부라고할수 있다. 김대통령은 UR문제, 최근에 잇따라 일어난 측근인사들의 실언과사전선거운동 시비, 조계사 사건, 상무대의혹등으로 여권이 정치적 수세에몰린 시점에 이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이총리와 여권이불편한 관계가 노골화된 것은 이미 이총리가 관변단체에 정부지원 중단을 독자적으로 발표하고 사전선거운동 시비와 관련 시,도지사회의를 주재한 무렵부터였으나 여권은 그에 대한 불만을 속으로만 삭여온 것으로 알려졌다.이총리는 [소신있는 국정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물러나겠다]고 공언해왔고 그가 오래전부터 이의 실행을 결심했다는측근인사들의 주장은 이같은 관측을 더욱 설득력있게 만든다.청와대는 사표수리라는 전격조치가 발표되기 직전까지 이총리의 불만은 [내각 내부의 일이며 청와대를 겨냥한 것은 더욱 아니다]며 그 의미를 축소, 그의 {대쪽}같은 성품을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22일 청와대 관계자는 그의 경질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에대한 {문책성 인사}임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종비대표의 주례보고 석상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질}결심만은 청와대수석비서관들에게조차 마지막 순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총리가 새정부 출범과 함께 기용된 개혁정부의 상징적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새정부의 도덕성과 개혁이미지에도 적잖은 상처를 남겼다.정부는 또 이총리의 사임을 계기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가 상징하는 청와대비서실의 역할과 대통령중심제에서 국무총리의 위상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물음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총리는 재임기간동안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총리직 수행의 어려움을 여러번토로했다. 법리에 밝은 그는 헌법상으로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을 통할하는 중책으로 규정돼 있지만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방계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나머지 {대독총리} 수준으로 격하됐다는 시각을 가진것으로 알려졌다.

재임직후에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장관에는 실세와 허세장관이 따로 없음]을강조, 남다른 내각장악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기회있을 때마다 법과 질서의 확립을 강조하고 개혁의 본질도 {법과 질서}에서 찾으려한 그였다.그가 청와대와의 불편한 관계를 자초하게 된 원인도 [헌법상 권한을 최대한으로 행사 하겠다]는 그의 지론과 {현실}의 괴리때문이었다는 풀이도 이같은그의 성품과 국가관에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는 UR협상, 수돗물 오염사건, 조계사 폭력사건, 상무대 의혹 등에 대한 정부와 여권의 대응, 크고 작은 정부정책이 내각을 제쳐두고 청와대를 통해 발표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부의 주요정책이 비공식 경로를 통해 결정되는데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해 왔다. 그러나, 정작 UR협상과 수돗물 사건에 대한대국민 사과는 자신의 몫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같은 국정운영행태를 개선하고 총리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강화해왔고 최근에는 청와대와 안기부의 안가운영실태를 재조사하는등 권력의 핵심부를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청와대의 시각은 김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설치된 조정회의는 김대통령도 [필요하면 직접 회의를 주재하겠다]고 밝힌만큼 사실상 통일안보정책의기조를 마련하는 정책 결정회의의 기능을 가졌다는 쪽이었고 바로 이점이 이총리의 {대쪽성미}를 건드려 1백28일의 단명총리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그는 김대통령과의 마지막 주례보고때도 이같은 자신의 입장을 밝혔으나 김대통령은 그의 {돌출행동}을 대통령의 통치권에 대해 도전하는 {월권행위}로평가했다.

김대통령과의 청와대 대표회동이후 대여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민주당이 이점을 간과할 리 없다. 정부와 여권으로서는 가뜩이나 불안한 봄정국에 또 하나의 악재가 추가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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